인생이라는 마라톤
오늘 아침, 남편은 아들과 함께 마라톤에 나섰다. 커플룩을 맞춰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썬크림을 발라가며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20만원짜리 기타의 위력인지, 평소 같으면 투덜거렸을 아들도 순순히 아빠를 따라 나섰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주말을 맞았다. 갈비뼈가 금이 가서 한동안 집에만 있던 친구와 함께 산에 올랐다. 그 친구, 참 아이러니하게도 마라톤 연습을 하다가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 "거봐, 안 다치고 걷는 게 좋잖아"라고 말했지만, 웃음 속에 묘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산 정상에서는 도시락을 싸 와서 평상에 앉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이 보였다. 우리는 빈자리가 없어 그대로 내려왔지만,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
집에 일찍 도착했는데 아들은 자고 있었고,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라고 물었더니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시는 분이 달리다 쓰러지셨는데..."
심근경색이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에크모 시술을 받고 있다는 소식. 가족들은 거의 실신 상태로 병원 복도 바닥에 철푸덕 앉아 있다고 했다. 9시가 넘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친구가 오늘 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삼성전자 사장... 우리 남편 윗 상사였는데, 딸 결혼시키고 피로연에서 쓰러져 죽었어. 심장마비로." 결혼기념일이 제사날과 매년 겹쳐 얼마나 마음 아플까.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마라톤은 42.195km라는 정해진 거리가 있다. 결승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언제쯤 도착할지 대략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다르다. 결승선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10km에서 끝날 수도 있고, 100km를 달려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서부터 전력질주한다. 남들보다 빨리 앞서가려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숨 가쁘게 달린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걷듯 달린다. 주변 풍경을 즐기며, 함께 달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간다.
마라톤 연습을 하다 갈비뼈가 금이 간 친구처럼, 너무 서두르다가 중간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일어나서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갑자기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승선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코스를 이탈하는 사람도 있다. 피로연에서 쓰러진 그 사장처럼,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갑자기 레이스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알 수 없는 마라톤을 달려야 할까?
속도를 조절하며 달려야 한다. 전력질주도 좋지만, 중간중간 쉬어가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필요하다. 20만원짜리 기타를 사주며 아들과 함께 마라톤에 나선 남편처럼, 함께 달릴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가족들처럼, 중간중간 멈춰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챙겨야 한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지만,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인생 마라톤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갈비뼈가 금이 가도 회복되면 다시 산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이 멈추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러니 화내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오늘 하루하루를 잼나게 살아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라톤이니까, 결승선만 바라보고 달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달려야 한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을 챙기며,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일으켜 세워주며, 때로는 멈춰서 숨을 고르며.
남편이 9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이 밤, 병원 복도에서 철푸덕 앉아 있을 그 가족들을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마라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은 무사히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진짜 중요한 건 순위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게 달렸느냐가 아닐까.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달렸느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