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따라 가는 명성
3시간 수업이라 좋은점
오전 알바를 마치고 숨 가쁘게 달려가 2시간 30분 늦게 도착한 미학 수업. 예전 같으면 "고작 30분을 위해 뭐하러 가나" 했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무료 수업에 간식까지 제공되니 점심 대용으로도 그만이고, 무엇보다 이 수업을 통해 샤갈 전시회도 다녀오고 브런치 글감도 풍성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다음 주가 벌써 종강인데, 새 알바 장소가 수지라 마지막 수업조차 참석하기 어려울 판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투덜댔다. "고작 알바 때문에 마지막 수업을 빠지다니!" 하지만 결국 돈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런 고민이 비단 나만의 것일까. 수업 중 들은 천경자 화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의 대표작 '미인도'를 두고 벌어진 기막힌 논쟁 말이다. 작가 본인은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했고, 미술관 측은 "자기 자식도 몰라보냐"며 맞섰다. 법정 공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생각해보니 이 사건은 우리 시대의 복잡한 단면을 보여준다. 남의 작품을 베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기술이고 소질이다. 하지만 그 뛰어난 모방 실력의 주인은 자신의 이름조차 작품에 새기지 못한 채 '위작'이라는 불명예만 떠안게 되었다. 진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부인하고, 가짜 작품의 창작자는 익명으로 남는다. 도대체 무엇이 진품이고 무엇이 가품인가?
나처럼 알바 스케줄에 맞춰 수업을 선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예술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난다. 화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주문받은 그림을 그리고, 때로는 유명 화가의 화풍을 따라 하며 연명했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진품과 가품의 차이는 정말 명확한 것일까?
기법이 완벽하고 재료도 같다면, 심지어 원작자조차 구분하기 어렵다면, 그 차이는 과연 무엇에서 오는 걸까? 작가의 의도? 창작 당시의 감정? 아니면 그저 '최초'라는 시간적 우위일까?
내가 30분을 위해 수업에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
때로는 돈을 향해, 때로는 예술을 향해, 때로는 인정을 향해서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들 - 글이든, 그림이든, 선택이든 - 과연 어떤 것이 진품이고 어떤 것이 가품일까?
아니, 애초에 그런 구분이 필요한 걸까?
나의 현실적 선택도, 화가의 생계형 그림도, 모두 각자의 삶에서는 진짜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미인도가 진짜 가짜 뭐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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