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망간 방

고시원 알바


오늘도 누군가 달아났다 쓰레기만 남기고


썩은 음식들이 화석이 되어 플라스틱 그릇에 굳어있고


담배 재와 라이터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탁자 위


검은 봉지들이 터져 나온 삶의 잔해들


피로가 뼈 속까지 스며든 날엔 연민도 무뎌진다


그저 몸을 움직일 뿐


다섯 번째 쓰레기를 들고 갈 때


시계바늘은 이미 열한시를 넘어섰다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의 흔적을 지워내는


손 물걸레질하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린다


청소가 끝나고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숫자 십일만원


누군가의 도망은 나의 노동이 되고


나의 노동은 누군가의 도망을 감춘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을 모른 채 스쳐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밤 12시, 자전거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