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길 위의 유랑극단
젤소미나가 나팔을 불며 관객을 모으던 그 순수한 에너지를, 우리는 지금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본다.
"오늘도 화이팅!" 하며 브이를 그리는 수많은 젤소미나들이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떠다니고 있다.
그들은 '좋아요'라는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디지털 유랑민이다.
펠리니의 젠소미나가 잠파노에게 구박받으며 "나도 쓸모가 있어요!"라고 외쳤듯이, 현대의 젤소미나들은 "저도 인플루언서예요!"라고 외친다. 팔로워 수가 곧 존재가치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매일 자신의 일상을 상품화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졌다.
하지만 젤소미나의 진짜 매력은 순수함에 있었듯이, 진짜 매력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여전히 그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조회수에 목메지 않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 말이다.
잠파노의 2025년 버전은 우버 드라이버이거나 배달라이더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프리랜서 개발자나 1인 사업자일 수도 있다. 그들은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실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쇠사슬에 묶여있다.
영화 속 잠파노가 쇠사슬을 가슴으로 끊는 묘기를 보이며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듯이, 현대의 잠파노들은 "독립성"과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무기로 삼는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별점 시스템, 알고리즘, 그리고 끝없는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더욱 단단히 묶여있다.
카카오T 앱에서 별점 4.8을 유지하기 위해 승객에게 무릎 꿇듯 친절해야 하는 드라이버, 쿠팡 파트너스 수수료율 변동에 일희일비하는 유튜버들. 그들은 모두 현대판 잠파노다. 거칠고 독립적인 척하지만, 사실은 시스템에 더욱 깊숙이 종속되어 있다.
일 마토가 젤소미나에게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쓸모가 있다"고 말했을 때, 그건 진짜 지혜였다.
2025년의 일 마토는 아마 팟캐스터나 라이프 코치, 혹은 철학 유튜버일 것이다.
아니면 더 시대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챗GPT일지도.
"조약돌 하나도 우주의 질서 안에서 의미가 있다"던 일 마토의 철학이, 지금은 "당신의 존재 자체로 충분히 소중합니다"라는 자기계발서의 문장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원조 일 마토와 달리, 현대의 가짜 일 마토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불안정한 삶 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진짜 아이러니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일 마토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질문이 소중합니다", "실패도 성장의 과정입니다" 같은 말을 AI가 더 일관되게, 더 24시간 친절하게 해준다. 인간 일 마토는 기분 나쁜 날엔 짜증을 내지만, AI 일 마토는 항상 깨달은 현자다.
유랑극단이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며 관객을 찾아다니듯이, 현대인들은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앱에서 앱으로 떠돌아다닌다. 인스타에서 틱톡으로, 틱톡에서 쓰레드로, 쓰레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어디서든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한 끝없는 여행이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면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안정된 소속감을 찾지 못한 채 떠도는 현대판 유랑극단원들이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와이파이가 끊기면 패닉에 빠진다.
영화 「길」의 진짜 비극은 젤소미나의 죽음이 아니라, 잠파노가 너무 늦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비극도 비슷하다.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뒤늦게 깨닫는다.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사람들은 "진짜 중요한 건 가족과 건강"이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다시 야근과 성과에 매달리고 있다. 챗GPT가 나오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정과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AI에게 감정 상담까지 받고 있다.
젤소미나가 죽고 나서야 잠파노가 바닷가에서 우는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 닫고 나서야 책의 소중함을, 동네 카페가 프랜차이즈로 바뀌고 나서야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안다. 대형마트도 쿠팡 온라인에 밀리는 이시대
펠리니가 말했듯이 "진주는 굴의 자서전"이다. 현대인들도 각자의 진주를 만들고 있다. SNS 피드는 우리의 자서전이고, 유튜브 채널은 우리의 작품집이며, 인스타 프로필은 우리의 이력서다.
하지만 진짜 진주는 여전히 고통과 시간이 만드는 것이다. 좋아요 수나 구독자 수가 아니라, 진정성과 꾸준함이 만드는 것이다.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아니라,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가 진짜 진주다.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다만 말이 자동차가 되고, 마을 광장이 온라인 플랫폼이 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고, 여전히 소속감을 찾아 헤매고, 여전히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펠리니가 보여준 희망도 여전히 유효하다. 젤소미나의 순수함이 잠파노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진정성은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알고리즘이 아무리 발달해도,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결국 사람들이 감동받는 건 진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스마트폰이라는 나팔을 들고, 소셜미디어라는 무대에서 공연하며. 언젠가는 우리도 잠파노처럼 바닷가에서 울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눈물조차 우리만의 진주가 될 것이다.
결국 길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펠리니가 그랬듯이, 우리도 길 위에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종이가 아닌 브런치에 외줄타기 처럼 외롭게 글을 남기는거 처럼
1954년 펠리니가 만든 「길」영화를 보고
드뎌 굴속에서 나의 진주를 찿았다!
오늘 종이로 된 책을 만났다!
다음 진주를 찿아서.... 나의 유량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