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붙이는 자와 떼는 자의 은밀한 대화

전단지 수집가들

전단지 전쟁


"어디서 나오셨어요?"

밤 10시, 조끼를 입은 시민정비단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나처럼 전단지를 떼고 있던 그는 현수막까지 들고 있었다.

아, 이 분이 그 소문의 '월 150만원 풀타임러'구나.

나는 그저 저녁 산책하며 용돈벌이하는 '파트타이머'일 뿐인데.

신호등 기다릴 때 슬쩍, 걸어가다 보이면 뜯적뜯적.

기분 내킬 때만 하는 이 알바로 통장에 몇 천원씩 들어온다.

어떤 날은 전단지가 없어서 못 떼고, 어떤 날은 귀찮아서 안 떤다.

문득 엄마가 잠깐 했던 속눈썹 붙이기 알바가 생각났다. 작은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붙이던 그 모습. 지금의 나처럼, 작은 일에도 나름의 장인정신이 있었구나.


붙이는 자들의 개성

조금 더 걸어가니 젊은 커플이 2인 1조로 전단지를 열심히 붙이고 있었다.

아, 저들이 내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구나.

2년간 전단지를 떼다 보니 붙이는 사람들의 스타일이 보인다.

완벽주의자형: 테이프를 네 모서리에 모두 붙이는 분. 떼기는 힘들지만 그 꼼꼼함에 존경심이 든다.

효율주의자형: 가운데 한 곳만 딱! 붙이는 분. 바람에 펄럭이지만 떼기는 쉽다.

예술가형: 운동 벽보를 줄로 동동 묶는데, 매듭 한쪽만 당기면 쫙 풀리는 그런 분. 이분 마음까지 풀리는 것 같다. 칼 없이도 되니 너무 좋다.

고집쟁이형: 매듭을 복잡하게 꽉꽉 묶어서 칼로 잘라야 하는 분. 왜 이렇게 어렵게 하시나요?


무명의 대화

매듭만 봐도 안다. '아, 이건 그분이 묶으신 거네.'

떼는 나와 붙이는 그들 사이에는 묘한 교감이 있다.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그들의 '작품'을 통해 성격을 읽고, 나는 그에 맞는 '해체 기술'을 발휘한다.

붙이는 자는 생각한다. '이거 누가 떼겠지?' 떼는 나는 생각한다. '이거 누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붙였지?'

우리는 도시의 밤을 무대로 한 무명의 릴레이를 하고 있다.


작은 일의 큰 의미

월 150만원을 버는 프로부터 몇 천원 용돈벌이하는 나까지.

각자의 사정으로 이 일을 한다.

붙이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하려 하고, 떼는 사람은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려 한다.

서로 반대 일을 하지만, 결국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속눈썹 한 올 한 올 붙이던 엄마처럼, 전단지 한 장 한 장에도 누군가의 생계와 정성이 담겨 있다.

오늘도 밤거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내일은 또 어떤 스타일의 매듭을 만날까? 그리고 그 매듭 뒤에 숨은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떼는 자와 붙이는 자,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매일 밤 만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일간의 고군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