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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12. 2022

당선작이라고 말하기 전까진 졸작에 불과했다!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5화

페이퍼 작성 : 2005년 12월 19일                                 시간적 배경 : 2005년 12월 18~19     



  혹시 신춘문예에 도전해보신 분들, 등단의 기쁜 소식을 새해 1월 1일 신문 지면으로 확인할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신 적 없으신지? 난 예전에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1월 1일 새벽에 떨리는 마음으로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입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화면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등단자 명단에 내 이름이 발견되기를 기대하며. 

  근데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었다. 등단자의 당선소감과 사진을 실으려면 각 신문 문화부 기자님께서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당선자에게 기쁜 소식을 알린 다음 그들로부터 소감이나 사진을 받아서 편집을 해야 된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난 너무나 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일찍 알려줄 줄도 몰랐다. 내 등단 소식은 2006년 새해를 맞기까지 아직 13일이나 남은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에 전해졌다. 그 날도 난 어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집에서 노트북으로 ‘한게임 맞고’를 쳤다. 남들처럼 여친이 있었다면 데이트를 했지 절대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과 여친 없을 때는 집에서 혼자 맞고 치는 것만큼 저렴하면서도 시간이 잘 가는 것도 없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귀한 시간에 마땅히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이 심하게 몸을 떨었다.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할 사람이 없는데?’


  발신표시번호를 확인하니 낯선 번호였다. 보통 스팸전화였기에 이럴 땐 받지 않았는데 맞고 치는데 몰두하다 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그만 받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최지운 작가님 되시죠?”


  특이한 스팸전화였다. 내 이름까지 알고 전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 맞는데요.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신문인데요.”


  여기까지만 말했어도 난 순간 이게 내가 그토록 12월만 되면 그렇게 받고 싶어 했던 전화, 당선알림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그 순간 바로 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에 응모하신 동화가 당선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예, 고맙습니다.”

  “모레 다시 전화드릴 테니까 당선작품 파일하고 당선소감, 사진 준비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분명 기뻐서 펄쩍 날뛰어야 할 텐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멍해졌다. 일단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은데다 더욱 중요한 건 서울신문에 무슨 작품을 냈는지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서울신문 말고 전북일보에도 동화를 응모했었는데 그만 헷갈린 것이다. 전화를 받는 동안 맞고는 쓰리고에 피박, 광박까지 당해 순식간에 130만원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열 받아서 분을 못 이기고 씩씩거렸을 텐데 이젠 그것 이상의 상금이 생긴다는 생각에 오히려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하필 다음날이 바로 ‘아동문학특강’ 강의의 종강일이었다. 내 동화를 합평하는 순서였는데 하필 그 동화가 서울신문 당선작이었다. 난 강의시간에 신춘문예 당선을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물론 희곡이나 시나리오에서 당선되었다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겠지만 그저 아동문학특강 강의에서 학점을 받고자 겨우 쓴 동화 두 편 중 하나가 덜컥 된 것이었다. 평소 동화에 뜻을 둔 이들에게는 내 등단소식에 이런 절망감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아직 그런 영광을 누리지 못했는데 동화 전공도 아닌 저 사람은 고작 두 편 만에 등단을 했어. 천재인가? 

  하지만 다짐과 달리 강의시간에 내 동화가 여러 학생들에게 마구 짓밟히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교수님도 내 동화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아 그냥 침묵하고 넘어갔다가는 B학점도 못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는 수 없이 ‘작가의 변’ 시간에 마음을 바꿔 등단사실을 공표했다.


  “일단 부족한 제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신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을 드리며 죄송하다는 말씀 덧붙입니다. 이 형편없는 작품을 서울신문을 구독하시는 분들은 1월 1일에 한 번 더 보실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혹시 신문에서 제 동화를 보게 되시거든 그냥 재빨리 넘기십시오.”


  학생들은 ‘1월 1일’과 ‘신문’을 통해 금방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갑자기 교수님의 주재로 방금 전에 했던 합평을 다시 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과는 다른 합평이 펼쳐졌다. 이제 학생들은 내 작품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려 애썼고 이는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이제 때늦은 칭찬들이 와 닿지 않았다. 그저 교수님이 A+를 주셨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나저나 내 입으로 창피하게 등단소식을 떠들고 다닌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학점만 아니었다면 당선소식을 신문에서 누군가 보고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아동문학창작 강의 종강일 합평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엄청 깨졌지만 그래도 당당히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된 내 동화는 바로 <아빠의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이다.       


* 맨 왼쪽에 자리한 보라색 넥타이가 바로 나다.




(에필로그)     


  ‘아동문학특강'의 종강일에 내게만 의미 있는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바로 하루 동안 온 문자메시지의 수였다. 강의가 끝날 무렵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집에 도착해서야 확인하게 되었는데 아주 짧은 시간에 무려 열네 통의 문자가 와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등단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시간에 얘기하고는 곧장 집으로 왔는데 다들 어디서 알고 이런 문자를 보냈는지 원….  

  강의시간의 깜짝 등단발표가 통했는지 아동문학특강의 학점은 A+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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