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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10. 2022

미안하다 책으로는 안 나온다!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4화

페이퍼 작성 : 2009년 7월 16일                                     시간적 배경 : 2008년 4월 무렵



  공모전 발표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러긴 하지만 요즘 눈이 빠져라 내게 당선소식을 알려줄 전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장편소설 공모전이 있다. 바로 올 봄에 개최한 ‘멀티문학상 공모전’이다.

  상금이 무려 1억 원이다. 어마어마한 상금도 매력적이지만 잘되면 당선작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될 가능성이 높은 공모전이었다. 이런 메리트로 인해 동국대 문창과 재학시절부터 현재 서울산업대 문창과 재학기간까지 소설이라고는 소설창작 강의에서 몇 편을 끄적거린 것을 제외하면 없는 나도 장편소설을 완성해 과감히 응모했다. 

  그렇다고 공모전 소식을 접하고 나서 후다닥 쓴 작품은 아니었다.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장편소설에 관심을 갖고 습작을 시작한 작품이 있었다. 그게 멀티문학상 접수 기간에 맞추어 얼추 완성되었다. 그 작품을 도전한 것이었다.

  자세한 작품내용을 여기에서 밝히는 것은 삼가기로 하겠다. 당선된다면 책으로 나올 테니 그 때 확인하면 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말할 가치도 없는 작품이니 여기서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주제만 간단히 얘기하면 2008년에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 우정을 다룬 스토리라고나 할까? 여기까지만 보면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청소년소설쯤으로 보일지 모르나 최근 공모전에서 당선된 장편소설들의 주제가 진지하고 무겁긴 커녕 발랄하고 가벼운 게 많아 이러한 주제 때문에 공모전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심사위원들 맘에 들면 당선이고 아니면 탈락이지 뭐. 

  이 장편소설도 작년 하반기부터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실은 작품의 바탕이 되는 중편소설을 작년 상반기에 집필하여 대학원 소설창작 강의에서 발표했다. 그 작품을 쓸 때의 에피소드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고자 한다. 

  실제 장소와 배경이 많이 삽입되었기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묘사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날도 난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의 모델이 되는 실제 학교를 방문했다. 


<옥수동 타이거스>의 모티프가 되어주었던 서울시 옥수동에 자리한 모 고등학교


  한참 학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내가 본 것들을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 얼마쯤 후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교복을 보니 이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들 눈엔 웬 이상한 아저씨가 남의 학교를 기웃거리나 하며 불편해보였을 수 있다. 


  “아저씨는 뭔데 여기서 우리 학교를 살피는 거예요?” 


  건장한 남녀 고등학생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무섭다는 질풍노도의 고등학생들에게 붙잡힌 거 아닌가? 


  “어… 다름이 아니라 내가 이번에 소설을 쓰는데 이 학교가 주 무대거든. 그래서 취재 좀 하느라고.” 


  겁을 먹었던 지라 침착하고자 해도 저절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런데 학생들은 취재라는 말에 어느새 경계를 풀고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말요, 그럼 주인공은 누구에요?” 

  “어, 여러 명인데 기계과도 있고 건축과에 학과 학생들은 골고루 넣었지.” 

  “에이, 그건 옛날 얘기고 이젠 방송전문고등학교로 바뀌었어요.” 

  “그래? 학교 건물에 붙은 교명은 아직도 00공고이던데.” 

  “아니에요, 이름이 바뀌어서 이젠 00방송고란 말이에요.” 

  “정말? 그럼 낭패인데.” 


  어느새 나도 긴장을 풀고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그거 책으로 나오나요?” 


  난 그만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책으로는 안 나오는 나의 그냥 습작품이자 소설창작 강의 제출용 작품일 뿐인데. 왠지 이 얘기를 하면 당연히 실망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둘러댈 말도 없었다. 


  “책으로는 안 나오는데. 그래도 신춘문예 같은데 당선되면 신문에 실릴지 몰라.” 

  “에이~” 


  역시나 학생들은 실망한 표정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 일에 참견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덕분에 난 계속 학교 이곳저곳을 취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A420장 분량의 중편소설이 탄생했다. 장편으로 발전시켜 멀티문학상에 응모하면서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만약 당선되면 다시 학교를 찾아가서 그 학생들에게 말해주어야지. 드디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그러나 당선이 될지 안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만약 그 학생들이 당시 3학년이었다면 설령 당선되어 찾아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차선책도 생각해두었다. 


  “당선소감에 써야겠다. 그 때 그 00방송고 학생들아. 드디어 너희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그러니 꼭 한 번 보라고.”           




(에필로그)     


  나는 위의 약속을 무려 사년 뒤에야 지킨다. 일찍 지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번번이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2012년 말에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존과는 다르게 장편소설을 접수받는 독특한 신춘문예를 시작했다. 나이제한이 있어서 만 37세 이하만 응모할 수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한국경제신문의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난 장편소설 부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작품을 응모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동안 숱한 공모전에서 낙방했는데 설마 여기라고 붙겠는가 하는 자괴감이 작용했다. 다른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응모한 희곡이나 시나리오에 더 기대감을 가진 탓도 컸다. 

  하지만 나의 이런 예상과 달리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경청년신춘문예의 장편소설이 등단과 함께 내게 현재 소설가라는 직함을 만들어주었다.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는 당선소감을 요청했다. 나는 당선소감으로 이 페이퍼를 고스란히 발췌해 보냈다. 

  사년 전 4월의 어느 날, 모교를 기웃거린 어떤 작가지망생과의 일들을 당시의 학생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기억했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야, 신춘문예에 당선되어서 신문에 실려. 책으로도 나오니까 꼭 한 번 봐.”


  제1회 한경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등단작은 석달 후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의 제목은 <옥수동 타이거스>이다.


<옥수동 타이거스 (2013,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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