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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10. 2022

성시경씨 죄송해요!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3화

페이퍼 작성 : 2008년 6월 29일                                         시간적 배경 : 2008년 6월 28



  가수 성시경이 7월 1일에 군대를 간다고 한다. 나랑 동갑인 79년생인데 이제 군대를 간다니 걱정이다. 군대에서 그의 고참들은 대개 7~8살이 차이나는 새파랗게 어린 동생들일 텐데. 나도 다른 이들보다 일 년 늦게 군대를 갔다가 나보다 어린 고참들에게 혼날 때면 군대니 참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속으로 자주 울컥거렸다. 그래도 뒤늦게 가면서 이상한 병명을 들먹이며 공익요원으로 빠지거나 아예 면제되는 연예인들과 비교하면 성시경은 대단한 사람이다. 

  작년에 집필한 단편소설에 성시경이 등장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편의점이고 시간적 배경은 한밤중이다. 주인공은 그 편의점의 야간 파트타이머이다. 어느 편의점의 파트타이머이든 심야근무를 하면서 라디오를 듣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도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를 듣는 걸로 설정했다.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2005~2008, MBC)>

  성시경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었지만 모든 것을 뒤틀리게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을 가진 주인공으로 설정한 나는 주인공이 성시경의 방송을 들으면서 뭔가 성격을 드러낼만한 대사를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대사가 다음과 같다.


  “얘는 얼른 군대나 갈 것이지 밤에 한가로이 DJ나 보고… 좋겠다. 이러다 얘도 면제되거나 공익으로 빠지겠지?”


  성시경이나 그의 팬이 보면 기겁을 하며 노발대발한 대사였지만 작년 여름부터, 


  “좋아. 나도 이제부턴 소설, 아주 글루미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쓴다.” 


  라고 결심한 내겐 위와 같은 대사를 날리는 주인공이 반드시 작품 안에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이 대사를 삽입한 단편소설이 작년 여름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올 여름에 문제가 발생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성시경이 드디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런 마당에 이 작품을 그대로 올 여름에 마감인 여러 공모전에 응모할 수 없었다. 퇴고를 하면서 난 다시 이 대사의 존폐여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대사를 들어낼까? 그렇지만 이게 없으면 주인공의 캐릭터를 살릴 수가 없는데. 다른 방송의 DJ에게 불만을 갖는 걸로 할까? 아, 어떡하지?' 


  이럴 때쯤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아. 지금은 성시경 대신 알렉스가 DJ를 보잖아. 걔도 성시경과 동갑에 아직 군대를 안 갔으니 그럼 주인공이 알렉스에게 불만을 갖는 걸로 할까?’ 


  하지만 이 생각도 곧 버리고 말았다. 현재 알렉스는 <우리 결혼할까요>에 출연하며 여성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감히 일개 작가지망생 따위의 소설에 그런 대사가 들어있다는 걸 팬들이 안다면 날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어떻게 했을까?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아마 가을에 발행되는 모 출판사의 계간지에 그 작품이 실리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그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영광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영영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고. 

          



(에필로그     


  모 출판사의 계간지에는 실리지 못했으나 이 소설은 훗날 <시간을 마시는 카페>라는 내 장편소설의 한 에피소드로 삽입되었다. 하지만 라디오방송 DJ에 불만을 날리는 주인공의 대사는 끝내 삭제되었다. 감히 인기 연예인인 DJ에게 군대 운운하는 위험한 대사를 날려서 팬들에게 공격을 받을까봐 그랬던 건 아니다. 다만 현재는 편의점에서 라디오방송을 청취할 수 없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아마 저작권 때문에 그러는 건 같은데 이런 변화된 실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단편소설은 <시간을 마시는 카페>에 실리기에 앞서 2010년 ‘제12회 의정부문학상’ 산문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간을 마시는 카페 (2006, 네오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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