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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07. 2022

폼 나는 짓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2화

페이퍼 작성 : 2008년 6월 19일                                          시간적 배경 : 2005년 11월쯤     



  삼년 전 초겨울 무렵으로 아마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난 직후였을 것이다. 역시 내 파란색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추후 공지된 수상자 명단에서도 내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되풀이되었던 슬픈 경험이었다. 벌써 세 번째인데 이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왜냐면 대산대학문학상이 대학생만이 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인지라 이제 난 더 이상 도전할 기회가 없었다. 


* 지금은 시나리오 부문이 없지만 예전에는 시나리오 부문이 존재했었다. *

  

  물론 당시에도 난 3학년이었던 지라 내년을 기약하며 예전에 숱하게 떨어진 공모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훌훌 털고 일어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난 4학년 1학기 조기졸업을 계획했었다. 더 늦게 졸업하면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나는 고작 한학기이지만 빨리 졸업해 서둘러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물론 여가생활에는 글을 쓰면서 작가지망생의 꿈을 계속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러니 앞으로는 대산대학문학상에 도전하여 수상한다는 꿈이 사라진 나는 낙선의 슬픔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러다 맥도널드에서 심야 근무를 마치고 지하철이 끊겨 집까지 그냥 터덜터덜 걸어오던 어느 날, 동국대학교 옆 앰버서더 호텔에서 잠깐 내려오면 자리한 자그만 정자 앞에서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게 되었다. 울고 나니 목이 말라 캔커피나 하나 마시고자 근처에 자리한 슈퍼(지금은 그 자리에 GS25 편의점이 자리한다)에 들렀다.

 

  ‘이런 슬픈 날, 캔커피가 웬 말?’

 

  이런 생각이 들자 캔커피 대신 병맥주를 구입해서는 평소의 나와 달리 정자에 앉아 청승맞게 홀로 쭉쭉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마구 들이켰으니 금방 취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바로 옆이 모교인 동국대이고 집까지도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하는 까닭에 오늘은 모든 근심과 걱정, 슬픔을 맥주와 함께 날려버리자 다짐하곤 들이키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참 얼큰하게 취하고 있을 적에 핸드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발신자번호를 확인하니 어머니인 박여사였다.

 

  “어디냐? 또 어디서 술 마시냐? 작작 좀 마셔라, 작작 마셔. 얼른 못 들어와!” 


  아들의 마음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박여사는 또 못난 아들이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줄 알고 핸드폰으로 잔소리를 토해내셨다. 


  “아, 엄마! 오늘 알바 하는 날이잖아. 그런데 내가 무슨 술을 마신다고. 집에 가는 중이야, 가는 중이라고.” 


  화가 잔뜩 난 나는 이렇게 말하고 거칠게 핸드폰을 끊었는데… 문제는 방금 전에 한 말과 다르게 난 술을 혼자서 잔뜩 마셨다는 것이다. 


  ‘아, 이러고 들어가면 밤에 잠도 못 자고 어머니한테 잔소리 들을 텐데.’ 


  결국 난 황급히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향했다. 술을 깨고자 집까지 뛰어갔고 그래도 깨지 않자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다행히 이리 한 덕분에 어머니는 내가 술을 마셨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한 듯 얼른 씻고 자라고 말하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난 술을 마신데다 정신없이 뛰어 씻는 게 귀찮아 그냥 자려고 했지만 완전범죄를 위해 샤워까지 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난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괴로움도 폼 나게 몸부림칠 수도 없는 서글픈 신세구나. 에휴, 내가 그렇지 뭐.’


  2005년이 마지막 대산대학문학상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2006년에도 물론 떨어졌지만 시나리오 부문에 다시 도전했다. 조기졸업을 하지 못해 그리 된 것이었다. 졸업학점을 못 채워서 그리된 건 아니었다. 

  위에서 얘기했던 청승을 떨고 한 달도 못 되어서 난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의 등단 전화를 받았다. 그로 인해 ‘등록금 완전 면제’라는 혜택을 받게 된 나는 졸업을 늦추기로 결심했다. 물론 대산대학문학상에 다시 한 번 도전해 올해는 반드시 수상하겠다는 굳은 목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수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은 자리하지 않았다. 대신 희곡 부문에서 낯익은 희곡분과 후배의 이름을 발견했다.

           



(에필로그)     


  한번은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분을 수상한 희곡분과 후배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내 신춘문예 등단이랑 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이랑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에이, 오빠 게 더 권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신춘문예야 죽는 그날까지도 계속 도전할 수 있지만 대산대학문학상은 많아야 네 번 밖에 도전할 기회가 없잖아. 그런데서 수상한 네가 난 더 대단해 보인다.”


  이 후배는 현재 대학로의 유명한 극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작은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이다.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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