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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05. 2022

이기호 작가님은 4위인데......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1화

페이퍼 작성 : 2008년 3월 22일            시간적 배경 : 2005년 5월쯤


  천운영, 한강, 이기호, 장정일, 김연수, 김영하… 

  위에 열거하신 분들은 문학을 공부하는, 그리고 소설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 봤을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 분들이시다. 그 중에서 특히 위의 여섯 분을 열거하며 페이퍼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분들이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2005년도 여름창작교실 문인 초청 특강’의 후보 선생님들이었으며 문인초청특강 섭외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드리기 위해서이다.      

  2005년 5월, 난 매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큰 연례행사 중 하나인 여름창작교실의 주체(행사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체의 의무인 행사장소 섭외, 행사일정, 행사예산, 행사스케줄 작성, 작품집 발간 등 굵직한 여러 업무들을 수행했다. 

  원래는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가 함께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이미 창작과 실기는 문창과, 작품 비평은 국문과로 학과 특성이 확연히 나누어져 버린 터라 본인의 습작품을 합평하는 것이 주목적인 여름창작교실에서 국문과 학생들은 참가에 소극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국문과의 주체 또한 행사준비 기간 동안 상당히 소극적이고 제한적으로 움직였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처럼 굵직한 업무들을 대부분 나 혼자 소화해야만 했다. 

  나름 미숙하고 시행착오도 많이 했지만 차츰 행사준비가 갖추어져 나갔다. 행사날짜는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3박 4일이었고 장소는 경기도 가평의 대형 민박집이었다. 회비도 정해졌으며 행사스케줄도 대략적이나마 마련되었다. 문제는 문인초청특강이었다. 

  매년 여름창작교실에는 이름 있는 문인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마련했다. 이튿날과 셋째날 오후에 각각 한 타임씩이었다. 즉, 두 분의 문인을 모셔야 했다. 그래서 보통 행사 전에 문창과와 국문과의 학생들에게 어떤 문인을 초청하면 좋을까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대개 큰 대자보를 문창과가 자리한 문화관과 국문과가 자리한 명진관에 각각 하나씩 붙이고 지나가는 문창과와 국문과 학생들이 원하는 문인을 기입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런데 2005년 당시에는 놀랄만한 일이 하나 펼쳐지고 말았다. 대자보에 많이 적힌 문인들의 수를 세어 가장 많이 나온 분을 무조건 섭외하려 했는데 소설 부문에서 엉뚱하게도 ‘귀여니’가 다수를 차지한 것이었다.

 

  “야, 학생들이 진짜 귀여니를 초청해서 강연 듣고 싶어 적은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섭외해 주어야 하는데.” 


  난 국문과 주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설마 그러려고요. 장난으로 그런 거겠죠.”

  “아니 그래도 진지하게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자보에 이런 장난을 치다니. 진짜 귀여니를 모셔올까 보다.” 


  귀여니는 학생들의 장난으로 단정 짓고 나머지 분들 중에서 한 분을 초빙하려 했다. 그 나머지 분들이 바로 페이퍼 시작과 함께 열거한 바로 작가들이었다. 그러나 이 분들이 어떤 분들이신가? 학생들이 부른다고 하면 쉽게 오실 수 있는 분들이 아니지 않는가? 천운영 작가님과 한강 작가님은 섭외에 실패했고 김영하 작가님은 아예 섭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분이 바로 이기호 소설가님이었다. 당시만 해도 난 이기호가 누구며 어떤 작품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선뜻 섭외를 시도하기가 두려웠다. 상대를 알아야 섭외가 쉬울 텐데 그렇지 못한 분을 하려니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주체의 의무를 다하고자 난 모 문예지의 신년호 맨 뒤에 수록된 작가들의 주소록을 보고 이기호 소설가님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낸 다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그분은 금방 전화를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여름창작교실 주체를 맡고 있는 최지운이라고 합니다.” 

  “근데 무슨 일이신가요?” 

  “저희가 문인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올해 소설 부문에서는 이기호 선생님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초청하고자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전화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그런 데서 강연을 할 자격이 되나요.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신데.” 


  이기호 소설가님은 처음엔 이렇게 겸손하게 사양의 뜻을 내비치셨다. 그러나 이렇게 통화가 연결된 이상 어떻게든 섭외를 성공시켜 다른 작가님에게 다시 섭외전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다. 


  “아닙니다, 선생님도 훌륭하십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초청하고 싶은 문인 1위에 선정되셨기에 제가 어떻게든 주체로서 선생님을 반드시 초청해야 합니다. 저의 이런 사정을 굽어 살피셔서 부디 물리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굽실거리고 말하자 작가님은 잠시 생각한 뒤, 


  “그럼 행사날짜와 행사장소가 자세히 나온 약도를 보내주십시오.” 


  라고 말하며 승낙을 하셨다. 작가님이 선뜻 승낙해주신 덕분에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문인초청 섭외는 의외로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마음한편이 걸렸다. 


  ‘사실 1위는 귀여니인데. 이기호 작가님은 4위밖에 안돼요.’ 


  솔직하게 말했다면 절대 섭외하지 못했으리라.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25일 강연에서 이기호 작가님의 인기는 예상을 초월했다. 강연의 반응은 더없이 좋았으며 심지어 어떤 학생은 사인을 받고자 선생님의 소설책을 사들고 오기까지 했다. 그때서야 이기호 소설가가 어떤 작품을 발표하셨는지도 알았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난 어려운 분을 용케도 섭외했다며 잘했다는 칭찬을 학생들로부터 받았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문학과지성사, 2004)>




  (에필로그     


  이후에 이기호 소설가님은 더욱 유명해지셨다. 2006년 초겨울에는 나마저도 그 분의 새로운 소설집을 샀다. 엄연히 문창과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단 한 권의 소설책도 구입하지 않았던 내가 말이었다. 소설집의 제목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였다. 유명한 소설가의 신작이니 무턱대고 산 것이 아니라 모처럼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분의 소설집을 보게 되었고 너무 재미있고 인상적이어서 덜컥 사버린 케이스였다. 

  현재 그 책은 내 수중에 없다. 그 이유가 들으면 다소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른다. 얼마 후 난 ‘문학동네’의 신입사원 모집에 응시했다. 최종면접까지 갔는데 네 명 중 두 명이 선발되는 것이었으니 합격률은 50%였다. 동기들은 합격을 확신했고 나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 난 보기 좋게 딱 떨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물함을 정리하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출판사가 하필이면 문학동네였다. 


  ‘으악~ 문학동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난 그 책을 당장에라도 버릴까 하다가 이기호 소설가님을 좋아했던 동기 선화양에게 선물해버렸다. 무려 9,500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었는데도 말이다. 참, 그러고 보니 2005년 여름창작교실에서 소설집에다 친히 이기호 작가님의 사인을 받았던 이도 바로 그 친구였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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