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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12. 2022

예비 3순위인데요.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6화

페이퍼 작성 : 2007년 8월 25일                                  시간적 배경 : 2003년 1월 초순



  2003년도 입시 때 난 ‘다’군에 추계예술대 영상학부 영상시나리오학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추계예술대 면접일 이틀 전에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인지도나 통학거리 등을 고려하면 동국대가 우위였기에 난 굳이 추계예술대에 면접을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응시료가 아까웠고 추계예술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냥 면접을 보기로 결심했다.


* 동국대는 예비순위도 없이 합격했었는데 추계예술대는 예비순위로 합격했었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대학입시는 알 수가 없다,


  올해 처음 신설되는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면접장 입구는 응시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난 그저 신기한 눈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여유롭게 기다렸다. 한 번에 네 명씩 들어가서 면접을 보는 방식이라 내 차례는 의외로 금방 다가왔다. 

  면접장 안에는 세 명의 교수님이 자리하셨다. 가운데에 앉으신 교수님이 내 왼편에 앉은 여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 학교 말고 또 어디를 지원했나?”


  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다른 대학 어디를 지원하든 그게 이 면접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학교에 왜 지원했는가? 입학한다면 포부는? 아님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지 등을 물어봐야 할 텐데 다른 대학은 어디를 지원했나? 

  하지만 면접관의 질문이니 여학생은 순순히 대답했다.


  “가군은 중앙대, 나군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각각 지원했습니다.”

  '앗, 이 여자도 동국대 문창과에 지원했구나.'


  속으론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 교수님과 여학생의 대화를 엿들었다. 


  “둘 다 떨어졌나?”

  “예. 중앙대는 예비순위에도 못 들었고 동국대는 예비 2순위입니다.”

  “아니 그럼 동국대는 거의 합격 아냐?”

  “아니에요. 동국대 문창과는 예비 1순위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에요.”

  '야, 이 여자는 간발의 차이로 떨어졌구나. 난 붙었는데. 잘했으면 03학번 동기가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럼 자넨 어디를 지원했나?”


  그 교수는 바로 내게로 방향을 돌려 같은 질문을 하셨다. 


  “예? 전 가군에 서울산업대, 나군은 동국대 문창과를 각각 지원했습니다.”

  “자네도? 자넨 몇 순위야?”


  차마 붙었는데 그냥 학교 구경 겸 면접이나 보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그건 옆에 앉은 여학생을 우롱하는 행위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둘러대기로 했다.


  “전 3순위입니다.”


  지금 그 여학생은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을지 궁금하다. 혹시 추계예술대에 들어간 건 아닐까? 근데 예비 1순위도 떨어진다는 동국대 문창과에서 03년도에 처음으로 추가 합격이 한 명 발생했다. 누군가 한 명 더 입학을 포기했더라면 그 여학생도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은 나도 그 여학생을 짓밟고 현재까지 동국대 문창과의 학생 노릇을 하고 있다. 나보다 더 문학을 사랑하고 글 쓰는 걸 보람으로 느끼는 문학소녀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내가 현재 동국대 문창과에 다니고 있다는 걸 고맙게 여길 따름이다.      




(에필로그)     


  추계예술대 면접일이 공교롭게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실기시험일과 겹쳤었다. 아마 동국대 문창과에 합격하지 않고 추계예술대 면접도 자신이 없었다면 분명 서울예술대로 향했을 것이다. 


* 2020년 3월부터 서울예술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20여년 전 동국대, 추계예술대도 실패했더라면 모교가 되었을 수도 있는 학교였다.


  추계예술대 정문에는 서울예술대로 향하는 학생들을 실어 나르려는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대기해 있었다. 요금이 다소 비싸긴 했지만 한방에 서울예술대로 데려다주니 기회비용 측면에서 비싸다고 말할 순 없었다, 대개 추계예술대에 응시한 학생들이 서울예대로 지원했기에 면접을 마친 많은 응시생들이 버스기사의 호객행위에 넘어가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난 이를 무시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서울예술대 응시료도 아깝긴 했지만 너무 멀리 자리한데다 실기시험까지 봐야 해서 귀찮아서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 면접장에서 내 옆에 앉았던 동국대 문창과 예비 2순위의 그 여학생이었다.


  “서울예술대 문창과는 시험 보러 가지 않으시나요?”

  “네. 전 자신이 없어서….”


  귀찮아서라고 곧이곧대로 얘기할 순 없었다.


  “저는 보려고요. 추계예술대도 면접을 그리 잘 본 것 같진 않아서요. 나중에 추계예술대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그러면서 서울예술대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나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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