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6화
페이퍼 작성 : 2007년 8월 25일 시간적 배경 : 2003년 1월 초순
2003년도 입시 때 난 ‘다’군에 추계예술대 영상학부 영상시나리오학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추계예술대 면접일 이틀 전에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인지도나 통학거리 등을 고려하면 동국대가 우위였기에 난 굳이 추계예술대에 면접을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응시료가 아까웠고 추계예술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냥 면접을 보기로 결심했다.
올해 처음 신설되는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면접장 입구는 응시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난 그저 신기한 눈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여유롭게 기다렸다. 한 번에 네 명씩 들어가서 면접을 보는 방식이라 내 차례는 의외로 금방 다가왔다.
면접장 안에는 세 명의 교수님이 자리하셨다. 가운데에 앉으신 교수님이 내 왼편에 앉은 여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 학교 말고 또 어디를 지원했나?”
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다른 대학 어디를 지원하든 그게 이 면접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학교에 왜 지원했는가? 입학한다면 포부는? 아님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지 등을 물어봐야 할 텐데 다른 대학은 어디를 지원했나?
하지만 면접관의 질문이니 여학생은 순순히 대답했다.
“가군은 중앙대, 나군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각각 지원했습니다.”
'앗, 이 여자도 동국대 문창과에 지원했구나.'
속으론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 교수님과 여학생의 대화를 엿들었다.
“둘 다 떨어졌나?”
“예. 중앙대는 예비순위에도 못 들었고 동국대는 예비 2순위입니다.”
“아니 그럼 동국대는 거의 합격 아냐?”
“아니에요. 동국대 문창과는 예비 1순위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에요.”
'야, 이 여자는 간발의 차이로 떨어졌구나. 난 붙었는데. 잘했으면 03학번 동기가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럼 자넨 어디를 지원했나?”
그 교수는 바로 내게로 방향을 돌려 같은 질문을 하셨다.
“예? 전 가군에 서울산업대, 나군은 동국대 문창과를 각각 지원했습니다.”
“자네도? 자넨 몇 순위야?”
차마 붙었는데 그냥 학교 구경 겸 면접이나 보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그건 옆에 앉은 여학생을 우롱하는 행위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둘러대기로 했다.
“전 3순위입니다.”
지금 그 여학생은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을지 궁금하다. 혹시 추계예술대에 들어간 건 아닐까? 근데 예비 1순위도 떨어진다는 동국대 문창과에서 03년도에 처음으로 추가 합격이 한 명 발생했다. 누군가 한 명 더 입학을 포기했더라면 그 여학생도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은 나도 그 여학생을 짓밟고 현재까지 동국대 문창과의 학생 노릇을 하고 있다. 나보다 더 문학을 사랑하고 글 쓰는 걸 보람으로 느끼는 문학소녀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내가 현재 동국대 문창과에 다니고 있다는 걸 고맙게 여길 따름이다.
(에필로그)
추계예술대 면접일이 공교롭게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실기시험일과 겹쳤었다. 아마 동국대 문창과에 합격하지 않고 추계예술대 면접도 자신이 없었다면 분명 서울예술대로 향했을 것이다.
추계예술대 정문에는 서울예술대로 향하는 학생들을 실어 나르려는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대기해 있었다. 요금이 다소 비싸긴 했지만 한방에 서울예술대로 데려다주니 기회비용 측면에서 비싸다고 말할 순 없었다, 대개 추계예술대에 응시한 학생들이 서울예대로 지원했기에 면접을 마친 많은 응시생들이 버스기사의 호객행위에 넘어가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난 이를 무시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서울예술대 응시료도 아깝긴 했지만 너무 멀리 자리한데다 실기시험까지 봐야 해서 귀찮아서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 면접장에서 내 옆에 앉았던 동국대 문창과 예비 2순위의 그 여학생이었다.
“서울예술대 문창과는 시험 보러 가지 않으시나요?”
“네. 전 자신이 없어서….”
귀찮아서라고 곧이곧대로 얘기할 순 없었다.
“저는 보려고요. 추계예술대도 면접을 그리 잘 본 것 같진 않아서요. 나중에 추계예술대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그러면서 서울예술대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나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