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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15. 2022

아웃당한 오리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7화

페이퍼 작성 : 2006년 11월 9일                                시간적 배경 : 2006년 11월 9     



  ‘덕아웃(Dugout)’은 야구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대기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감독들과 선수들이 이곳에서 기다란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자신의 팀 경기를 관람한다. 웬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용어를 절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문창과 학우들은 덕아웃이 뭔지를 잘 몰랐다. 

  2주 전 희곡분과 합평시간에 난 <덕아웃>이란 제목의 희곡을 선보였다. 작년에 쓴 것이라 공개하고 싶진 않았지만 갑작스레 모 여자 후배와 합평일자를 바꾸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내놓게 되었다. 원래 합평이라는 것이 칭찬보다는 쓴소리를 하고자 만들어진 자리라 달게 학우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새겨들을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는 그만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아웃이 뭐에요?”


* 지금은 프로야구에도 여성팬들이 많아 설마 덕아웃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여성분들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희곡 속에서 아주 잠깐 나온 용어도 아니고 제목이기도 했는데 그걸 몰라 나한테 물어보다니. 제목 자체를 모르니 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이미 물 건너간 것이었다. 아무리 여학생이고 야구에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덕아웃을 모른단 말인가? 네이버 지식검색이라도 해보던가? 이건 마치 동방신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근데 믹키유천이 누구야?’


  라고 질문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오늘 또 한 번 난 덕아웃이라는 그 희곡 제목으로 좌절하고 말았다. 졸업 작품 제출일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였지만 그 날 강의도 많고 향후 일정이 어찌될지 몰랐던 나는 그냥 오늘 제출하려고 실습실에서 희곡을 출력했다. 그런데 우연히 동기인 세화가 프린터에서 출력되어 나오는 내 희곡의 제목을 힐끔 본 모양이다. 그런데 걔가 하는 말?


  “오리 새끼가 나오는 내용이야?”


  아마 덕아웃의 ‘덕’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야, 그럼 덕아웃은 오리가 아웃되다는 뜻이냐? 설마 내가 그런 제목을 붙였겠니?”


  엄연히 졸업작품 제목인데 오리가 아웃되다는 뜻으로 와전되었다. 단지 세화나 후배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건 상관없다. 야구를 모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면 되니까. 그런데 만약 이걸 심사하시는 이만희 선생님께서,


  “덕아웃이 대체 뭐지?”


  이리 궁금해 하시면 난 정말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위에서 소개한, 현재 나의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작품으로 되어있는 <덕아웃>은 제목 말고도 작품 안에서 많이 언급된 야구용어로 인해 많은 문창과 여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퀴즈 번트(squeeze bunt)’도 그 중 하나였다. 

  스퀴즈 번트는 3루에 주자가 나가있는 상황에서 어떡하든 그 주자를 불러들여 득점을 올리고자 타자가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하며 배트스윙을 하는 대신 무조건 갖다 맞추는 걸 의미한다. 기껏 해야 투수 앞 땅볼이지만 이미 사인을 받은 3루 주자는 투수가 아웃시키기 전에 홈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아 박빙의 승부에서 한 점을 내기 위한 작전으로 많이 활용된다. 대신 타자는 십중팔구 죽는다. 투수는 3루 주자를 포기하는 대신 빠른 송구로 1루에 던져버려는 까닭이다. 즉, 스퀴즈 번트는 자신을 희생해 팀에 기여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엿볼 수 있지만(더구나 내 작품 속의 주인공은 대기록을 눈앞에 둔 홈런타자였다) 이 야구용어를 모르면,


  “아니 그러니까 주인공이 왜 이 스퀴즈 번트라는 것을 하느냐고요?”


  라고 반문하면서 작품의 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네이버 지식검색 한 번만이라도 이용하라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이래서 아직 한국문학에서는 스포츠장르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 이 그림을 집어넣었더라면 이해하기 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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