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갈로의 노래 1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사의 무거운 왼쪽 나무 문을 들어 닫았다. 문이 닫히며 어두워진 축사 안이 싫었던지 말 몇 마리가 후루룩 투레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이내 곧 잠잠해진다.
며칠 내내 쉬지 않고 내리는 비로 농장 안은 끈적이는 진흙으로 한 걸음이 어려운 질퍽한 죽이 되어 있다. 가죽으로 만들어져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는 있지만 이 끈적한 죽을 밟고 주차장까지 간다는 건 아무래도 즐거운 일은 아니다. 차라리 부츠를 벗어 들고 맨발로 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주차장 수돗가에서 발을 씻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럼 어느 정도 귀한 가죽부츠가 흙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진흙에 박혀 곤란한 일도 없을 테니까..
신고있는 부츠는 농장주인 마리의 큰 딸이 신다가 이제는 신지 않게 되었다며 이 농장에서 일을 시작 하던 첫 날에 마리가 내게 준 것이었다. 내게는 약간 큰 부츠 였지만 농장일을 하기에는 이만한 부츠가 없었다. 사실 말을 타기 위한 부츠의 실기능 보다는 무릎까지 올라오던 부츠를 신고, 부츠 보다도 더 길어서 무릎을 덮던 두꺼운 긴 양말과 함께 나는 평소 겁내 하던 뱀들로 부터 다소 안전한 기분이 들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게는 전사의 아이템과도 같은 것이었다.
참 좋은 생각을 해냈다는 잠시의 기쁨으로 나는 뻐근한 허리도 펴 줄 겸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진한 회색으로 무겁게 땅까지 내려앉아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아... 트레이시...
이른 아침에 잠깐 만난 농장 찬모 트레이시가 출근을 하기 위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되도록이면, 사무실 가까운 곳에 자기 차를 주차하기 위해 농장주인 피터의 커다란 램 트럭과 담장 사이에서 애를 쓰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트레이시는 운전석의 유리를 조금 내리고 소리쳤다. 그녀의 낡은 마쯔다는 차 유리가 마치 하얀색 종이로 코팅을 한 것처럼 김이 서려 있어서, 마쯔다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스테이시는 차의 와이퍼를 작동시켜 놓고 차 안에서는 손으로 유리창을 연신 닦아내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 민!! 뒤를 봐주겠어?"
나는 오늘도 이렇게 쓸모있게 쓰여진다.
내가 차 뒤쪽에 서 있는 걸 확인한 스테이시는 최대한 후진을 했다가, 내가 차의 엉덩이 부분을 탁탁 치며 신호를 주자 크게 각도를 오른쪽으로 꺾어 기어이 램과 담장 사이에 들어가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사무실 입구에 설치해 놓은 어닝이 있어 그녀는 비를 덜 맞고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고, 그런 다음으로 사무실 뒷문을 통해 비를 맞지 않고 식당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사무실 입구 어닝 밑에 서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마치 한숨 쉬듯 그렇게 길게 내뿜었다. 하얀 연기는 높이 올라 어닝에 막혀 오갈 데를 못 찾고 이리저리 흩어진다.
" 민, 월요일과 화요일에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 했지?"
나의 시선은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 일자리 얘기가 나오자 얼른 스테이시에게로 옮겨갔다.
" 어디 마땅한 자리가 있나요?"
담배를 깊이 한 모금 입에 가득 담았다, 다시 길게 내뿜은 스테이시가 말을 이었다.
" 어젯밤에 스몬에게서 전화가 왔었어.. 아마 일자리를 줄수도 있다 하는 것 같아. 자세한 건 모르겠고 전화 먼저 해보고, 한 번 만나보도록 해"
스몬은 어쩌다 이 농장에 오는 스테이시의 친구다. 식당일이 바쁘거나, 직원이 부재중일 때면 스몬은 항상 와서 스테이시를 돕는다. 마르고 작은 몸집의 깐깐한 스테이시와는 다르게 스몬은 항상 단정히 영국여왕처럼 머리를 손질하고 웃을 때면 얼굴의 주름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귀부인과도 같은 우아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가끔 농장에서 인사만 하고 지났쳤을 뿐인데 그런 스몬이 내게 일자리를 주겠다하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내가 쓸모있게 쓰여질 다른 일자리를 구할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당장 스몬에게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