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갈로의 노래5
폴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곳엔 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이 있었고, 역시 흐릿한 LED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폴을 따라 계단을 밟았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왜 또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지 따위는 물을 수도 없었다. 나의 욕심으로 비롯된 성급한 판단으로 오늘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에 젖은 계단은 미끄러워 주의하며 걸어야 했고, 비가 오는 어두운 산속이 주던 익숙지 않던 분위기로 나는 조금 겁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폴은 작은 오두막에 도착한 후 자물쇠를 열었다..
그는 들어서며 입구의 스윗치를 올려 실내를 밝혔다. 들어서며 본 내부는 나무 원목을 그대로 써서 만든 작고 아담한 원룸으로, 더블 사이즈의 침대 하나와 작은 커피테이블과 의자 두 개 그리고 작은 책상이 전부였다. 들어서자 나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제재소에서 맡았던 그 냄새였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들어서고 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자 폴은 아직도 열려 있던 문을 닫기 위해 내 등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순간 흠칫했다. 그러나 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고 커피테이블이 놓여 있던 벽 쪽으로 다가가 벽을 밀었다. 문이었다. 그 문을 열고 다시 스윗치를 올리자 조금 다른 나무 냄새가 났다. 욕실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고 한편으론, 어쩌면 그는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그 욕조 또한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폴은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돌리며 적당한 물온도를 만들려 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욕실 밖에 서서 그가 하는 물 받기를 보고 있었다. 내가 한다고 말하려 하였다.
" 히노끼를 아나요?"
욕실 바닥 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로 된 욕조 옆에 걸터앉은 폴이 물었다. 히노끼...?
일본어 같기도 한 그 단어를 나는 모른다 하였다.
" 이 욕조는 히노끼라고 하는 나무로 만들어진 욕조예요"
욕조에 반 정도 물이 채워지자 그는 물을 껐다. 그러자 아까보다도 더 좋은 나무냄새가 방갈로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내가 지금 한 일이 당신이 앞으로 할 일이랍니다."
욕조에 물 받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 이 산장은 우리 부모님이 만든 것이고 이 욕조 또한 그렇지요. 그동안은 나의 누나인 스몬이 관리를 했지만, 이젠 그녀가 무릎이 좋지 않아 산을 오르내리며 이 방갈로들을 관리하지 못해요. 특히 이 히노끼 욕조를요..."
그리고 그는 욕실 한편에 있던 작은 린넨장을 열어 반듯하게 개어져, 가득히 쌓여 있던 면소재의 천들을 보여 주었다.
" 반신욕이 끝나면 바로 이 천으로 욕조의 물기를 닦아 주세요. 그런 후에는 여기 이 작은 통풍구를 열어 주고요 그래야 욕조가 잘 마른답니다"
하며 욕조 옆에 있던 작은 통풍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내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욕실에서 나온 폴은 커다랗고 파란 아키아 가방을 열어 침대 시트와 이불커버를 꺼냈다. 그리고 침대 시트를 깔기 시작했다. 꽤나 능숙해 보였다. 이불 커버를 씌우려 할 때 나는 그제야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 지금 당신은 배우는 중이에요... 그러니 지금은 잘 보기만 하세요"
그는 이불에 커버를 씌우고 난 후 두 개의 배게에도 커버를 씌웠다. 그리고는 편편하게 펴서 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스몬의 것으로 보이는 파자마와 바지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 젖은 옷은 이따가 저에게 주세요. 세탁을 해서 말려 놓을게요."
" 괜찮아요 내일 그냥 입을 수 있어요."
그러자 그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알았다고 했다.
폴과의 불편한 독대가 끝나고 그는 내려갔다. 그가 나가자 나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 욕실로 돌아와 나는 잠시 아까 폴이 앉아 있던 욕조옆에서 그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물에 손가락을 넣었다. 너무 따듯했다. 나는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홀린 듯 들어갔다. 녹찻물을 우려내는 것처럼, 욕조는 따듯한 물에 나무의 진액을 우려내고 있었다. 이 향기는 뭐지?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제야 정면의 벽에 써 놓은 문구가 보였다.
" 욕조 안에서는 소금과 입욕제 사용금지"
" 욕조 사용 전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먼저 해 주세요"
나는 샤워를 하지 않고 욕조에 그냥 들어온 것이었다. 또다시 민폐다. 다시 한번 내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참았던 울음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아.. 나는 왜 이러지..?"
남편을 피해 이 산촌에 숨어 살기 시작하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어리숙한 엄마로 인해 고생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도움을 주려 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민폐만 끼치고 있었다. 그동안은 아이들과 늘 함께여서 울고 싶어도 맘편히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산속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이 방갈로에서, 이 비 오는 밤에, 이 따듯하고 향기로운 욕조는 나를 풀어지게 하였고, 물을 빵빵히 가득 채워 언제든 터질것 같던 물풍선처럼 그랬던 나의 울음은, 드디어 터져버렸다. 욕조 안에서 웅크린 채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은 더 큰 울음을 불렀고, 눈치 없는 몸뚱이는 이젠 풀어져도 되는 줄 알았던지 그칠 줄 몰랐다.
" 이 산속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동안 애써 누르고 무시하던 그 못난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오늘만 울자. 딱 오늘만...
울어..
지금은 젖어도 되니까 울어,,,
눈을 감아 줄테니 실컷 울어,,,
눈물은 닦아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울어...
욕조 안의 물은 나의 진도 같이 녹여내었다. 일어날 힘도 없어 비틀거릴 때까지 소리 내어 울었다.
물이 식어서인지 한기가 조금씩 들기 시작하자 나는 욕조에서 서서히 일어나 물을 뺏다. 차가워진 욕조의 물이 빠지는 걸 보니 왠지 나의 울음도 배수구를 통해 빠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울어서 현기증이 조금 났지만,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침대 위에 놓인 파자마를 입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위로 묶어 올리려 할 즈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시 폴이었다. 폴은 아까 보았던 OIL SKIN 우비를 입고 양손엔 은색의 둥근 뚜껑이 덮인 접시를 올려놓은 은색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쟁반을 손에 든 채 그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고, 어두웠지만 그의 눈은 놀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든 쟁반을 뺏다시피 받아 들고 감사하다는 말과 동시에 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욕실로 가서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왜 그가 놀랐는지 알 것 같았다. 눈은 부울대로 부어 있었고, 그건 나도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잠시뒤, 작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폴이었다. 그는 창문의 커튼을 제치고 밖을 보라고 하였다. 나는 시키는 대로 커튼을 조금 제쳤다. 올라올 땐 불이 꺼져 있어서 볼 수 없었던, 조금 큰 크기의 방갈로가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안과 밖, 모두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켜 놓은 듯, 그 방갈로는 내리던 폭우 속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밝게 타는 듯했다.
" 나 여기 있어요.."
그는 창가에 서서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 나 여기 있을게요.. 무슨 일 있으면 소리쳐요.."
혹시 내가 산속에서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밤새 커튼을 조금 젖혀두고 그의 방 창문의 불빛을 보다 잠이 들었고, 그는 밤새도록 불을 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