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파란 방갈로의 노래 6

by 블루

다음 날 새벽 일찍 눈을 뜬 나는 조용히 방갈로 주변을 거닐었다. 나오면서 방갈로 문에 붙어있던 파란색 나무 패널을 보았다. 비는 잠시 그쳤고 산속에서 뿌리를 땅에 박고 있는 모든 것들은 물을 가득 머금고, 싱그러워 보였다.


풀들은 나무에 기대어 아양을 떨어대고,

나무는 하늘을 가린 채 잘난 척이고,

하늘은 나무와 다른 색의

작은 파편들로 흔들거린다.


" Good morning!"

폴의 금발에 가까운 연한 갈색 머리 한쪽이 삐죽이 솟아 있어 급하게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웃음이 났다.


스몬과 폴, 우리는 키오스크에서 아침을 같이 했다. 아침을 먹으며 스몬의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내가 묵었던 크기의 방갈로가 7개가 있으며, 방이 두 개인 패밀리 방갈로가 한 개라 했다. 게스트들은 주로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 퇴실을 함으로 나의 일은 월요일 오전 10시부터이고 끝나는 시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일이 없으면 아무 때나 끝내도 된다 했다. 그리고 게스트가 없었던 방갈로들은 매주 한 번씩 욕조에 물을 받았다가 물을 빼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나무 욕조가 말아 비틀어지는 것을 방지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욕조를 사용해 준다면 물 낭비가 아닌 거라며 스몬은 웃으며 말을 했다. 대단한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쓰던 침구들은 내가 걷어서 가지고 내려오면 스몬이 세탁을 해 둔다 했고, 방갈로마다 색깔을 딴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묵었던 방갈로는 파란 방갈로였다. 나는 그 후로도 그 파란 방갈로에서 매주 반신욕을 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나를 놓아주고 편히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유독 그 파란 방갈로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던 그 방갈로에는 예약된 손님들이 그다지 많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주 수입은 폴이 회계사라는 직업을 통해서임을 알게 되었다. 폴은 피터의 농장을 비롯 주변의 굵직한 회사나, 농장, 가게들을 맡아 회계고문직과 함께 회계사직을 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무실은 그의 방갈로였다.


손님이 없던 한적한 방갈로의 욕조들을 돌보고, 먼지를 털어 주는 휴가와도 같은 멋들어진 일을 나는 의심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급여 또한 일이 있던, 없던, 무조건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치가 현금으로 지급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급여라고 말을 하자 스몬은 차 기름 값까지 포함해서라고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이틀을 산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폴과 나는 별로 만날일은 없었지만, 필요하면 나는 방갈로를 수리도 하고, 오일도 칠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항상 일의 마지막은 파란 방갈로에서의 반식욕으로 나의 일을 마쳤다. 천국이었다.


농장에 소문이 돌았다. 매니저인 사라가 곧 그만둘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다들 다음 매니저로 사라의 조수인 메간을 예상했다. 메간은 참 쾌활한 여자이다. 그녀는 누구와도 친했으며, 그녀를 찾아내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어디에서나 그녀의 굵고, 커다란 목소리는 튀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메간은 농장 시설설비팀의 팀장인 딜런과 그의 팀원들과 친했었는데 그들은 거의 모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꿉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놀라웠던건 메간과 딜런 사이에는 열 살짜리 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들은 서로가 각자 다른 연인이 있고, 아직도 농장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간과 딜런은 호주의 전형적인 시골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이곳에 태어나서 세상 밖이라고는 시드니에 있는 본다이 비치가 전부일만큼 이 산촌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호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축복을 받은 나라라 자부하며 살고 있었기에, 그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에 대해서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워낙에 농장주인 피터가 예절을 중요시 하는 신사였기에 직원들 사이에서도 예절을 강조한 이유로 그들이 내게 행한 직접적인 무례함은 없었으나, 가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낄낄거리며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은 내가 그들이 어떤 부류인지를 이해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즈음 농장을 은퇴하기로 확정된 사라가 농장에서 완전히 맘이 떠난 건지 사라는 더없이 게을러졌고,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내게 시켰다. 사라가 하던 일이라고는 식당에 앉아 트레이시와 잡담을 나누거나, 차를 담은 머그 잔을 손에 들고 나무늘보와도 같은 속도로 농장 그늘을 찾아 어슬렁 거리거나, 아니면 그녀의 사무실에 앉아 졸고 있는 것이 다였다. 일이 생기면 사라는 내가 어디에 있던지 찾아냈고, 내게 일을 주문했다. 바로 곁에 있는 그녀의 조수 메간은 사라의 이쁨을 듬뿍 받으며,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에서 떠날 일이 없게 했다. 메간은 사라가 자신이 해야할일을 내게 시킬 때마다 어깨를 들썩 하며 들어 보이며, 어쩌겠어..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민, 지금 당장 사료 저장 창고에 가서 사료량을 확인해 줄 수 있어? 팔렛과 귀리, 옥수수 각각 세어야 할거야. 말 관리사들이 올린 재고량과 맞는지도 일일이 확인하고. 유통기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사료들도 몇 개인지 세어줘. 혼자 못하겠거든 말관리사 이든에게 얘기해서 같이해. 그리고 사료 회사에 전화해서 부족한 만큼의 물량을 주문하고 언제 배달되는지 내게 보고하도록해"


"민 이번 시즌 승마교육생들에게 줄 인쇄물을 인원수 체크해서 넉넉히 프린트해 놓고, 강사들 명단도 좀 뽑아놔"


"민, 동쪽에 있는 울타리 작업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와. 그리고 언제쯤 끝나는지도.."


"민, 다음 주 수의사가 화요일에 온다 했는데, 확실히 몇 시에 오는지 오늘 컨펌받아놔. 그리고 그 말 주인에게도 연락해서 서로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해놔"


"민, 주방에서 덕트가 고장이라 하는데 가서 어디가 어떻게 고장인 건지 확인하고, 딜란에게 일을 주고 와"


그녀의 오더는 끝이 없었고, 한 가지라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야 했다.

사라가 OK 할 때까지...


그리고 사라는 더 나아가 사무적인 일까지도 내게 주문했다. 주로 해야 했던 일은 농장에 매일 청구되어 쏟아지는 인보이스와, 지불된 영수증을 일일이 스캔해서 컴퓨터에 저장 하는 일이 주된 것이었고, 농장안에 있는 모든 물품이 들고 나는 재고파악과 정리 그리고 매주 농장에 있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미리 확인해서 필요한 물품이나, 인쇄물들을 출력하는 일까지도 시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라는 물음을 한 번도 사라에게나,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일들을 할 때는 시원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 편히 일을 할 수 있기도 했고, 연일 40도가 넘어 50도가 육박하는 여름 날씨에 분뇨를 치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떤때는 나는 오히려 사라가 시킨 일이 끝났어도, 시원한 사무실에 남기위해 일부러 일을 만들어 하는 얕은수도 썻다. 예를 들어 스캔을 끝낸 영수증은 박스에 던져 놓고 보관을 했다가 3개월마다 회계사인 폴에게 건네면 되었지만, 나는 왠지 뒤죽박죽 섞여있는 영수증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했다. 그것도 나중에 찾기 쉽게 날짜순으로... 그리고 파일을 만들어 각각 보관했는데, 나중에 사라는 이 영수증은 어디에 넣어야 하는 거야 라며 내게 묻기 까지 하였다.

무더운 11월이 지나고, 곧 있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새로운 매니저가 발표될 것이라 했다.

나는 새로이 매니저가 된 메간이, 사라가 내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일을 시킬 것만 같아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이유는 사라와 메간은 절대 다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걱정했었던 건 매니저에게는 우선의 인사권이 있다는 거였다. 농장의 말관리사든, 조련사든, 나 같은 잡부든 누구든지 사라에게 먼저 면접을 본후 일하기로 정해지면 피터나 마리에게 보고를 하고 컨펌만 받는 농장의 시스템 이었기에 평소 내게 감정이 별로였던 메간이 나를 쫓아내려 한다면 그건 식은 죽 먹기 보다도, 더 쉬운 일이라는걸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일자리를 미리 알아 봐야 하는지 나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지옥이었다.


그 당시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를 몇 주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농장주 피터의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 나와는 거의 볼일이 없던 피터가 나를 보자고 했다 한다. 드디어 내가 잘린 건가?

나는 천근처럼 무거운 마음을 안고 피터의 사무실로 향했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