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속의 호랑이

파란 방갈로의 노래 7

by 블루

피터의 사무실에 정식적인 부름을 받고 오는 것은 처음이다. 어쩌다 피터의 우편물이 있을 때, 피터의 책상 위에 놓고 나갔던 것이 다였다. 심장은 더없이 잔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나는 피터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대신, 사라에게 내가 알아서 그만둘게요..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피터의 사무실엔 사라가 미리 와 있었다. 사라를 보자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나무뿌리를 그대로 의자로 만들어 알파카를 얹어 놓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웃으며 반겼다.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여유 있어 보이던 그 둘의 미소를 보니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꼈다. 나는 만약에 해고 통보를 받더라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등에 힘을 주고 앉았다.


"민이 우리 농장에서 일한게 얼마나 되죠?"

피터가 묻는다.

" 2년 6개월요'

나의 대답은 되도록이면 간결하려 의도했다.


"우리는 민이 매니저가 되어 줬으면 하는데, 민은 어떻게 생각해요?"

피터가 대뜸 꺼낸 말이다.


이건 무슨 소리지? 나를 놀리는 건가? 뭐 하자는 거야? 나의 머릿속은 하얘졌고, 방금 내가 들은 피터의 말을 다시 듣고 싶었다. 나는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는 말은 입속에서만 우물거릴 뿐 놀라 굳은 혀는 움직일 줄 몰랐다. 나는 마치 잠이 덜 깬 사람의 얼굴을 하고 피터와 사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몰래카메라를 이런 식으로 촬영을 하는가 싶기도 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액션을 취해줘야 할지 잠시 생각 하기도 했다


"그동안 민이 열심히 일을 해 주었고, 여기 사라와 폴이 추천을 했어요. 그리고 트레이시도요"

그러면서 피터는 들고 있던 세장의 A4 사이즈의 종이들을 내게 밀었다. 그것은 사라와 폴 그리고 식당 담당인 트레이시의 추천서였다. 그 추천서에 쓰인 글자와 서식이 다른 걸로 봐서는 장난은 아닌듯 싶었다. 그런데 폴까지?


"폴이 먼저 제안했어요. 민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리고 제가 사라에게 의견을 물었지요. 사라도 괜찮을거 같다 했었고 당분간 지켜보겠다 하더니 오늘 이렇게 추천서를 가지고 왔네요"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하기는.. 지금 민이 하는 일이잖아"

사라가 말을 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상자속의 호랑이라고 들어 봤어? 상자속의 호랑이는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사람들은 알수있지. 그 상자 속에 호랑이가 들어 있다는것을. 그리고 언제든 뛰쳐 나올수 있다는것도. 나는 민이 그 호랑이라고 생각해. 우린 그냥 상자속에 호랑이가 있다는걸 알아낸것 뿐이고..."


농장에서 굳이 서열을 만들어 줄을 세운다면, 나는 맨 마지막에 서 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이들은 어쩌다 매니저 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자 피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놓인 책상 위에서 파일을 하나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파일을 열고 말을 이었다.


"이건 민의 이력서예요. 여기를 보면 비록 졸업은 하지 못했어도 학교에서 호텔을 공부했다고 쓰여 있는데 맞나요?"

호주로 공부를 하러 왔다가 첫 아이가 생기면서 할 수 없이 중간에 포기를 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농장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면서, 혹시나 보탬이 될까 싶어 써넣은 나의 학력이었다.

"네 맞습니다"

"여기 사라말로는 농장에 대해서 작은 일부터 매니저가 하는 모든 일까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민이라고 하네요. 제 생각도 사라와 같고요"


나는 대답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이번 주까지 생각해 보고 말해 주세요"


사라와 내가 피터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 피터는 먼저 일어나 문을 열어 주며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과연 신사였다.


사라는 뒤뚱거리고 걸으며 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이라 식당엔 트레이시만 있었다.

" 축하해 민."

그녀는 어떻게 돌아 가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사라는 테이블 밑에 들어 가 있는 의자 하나를 꺼내고,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앉았다. 나도 사라 맞은편에 앉았다.

"사람들이 어이없어할 거예요"

"사람들 누구? 다른 사람들 생각을 왜 해? 나와 피터가 정하면 따르는 거지. 내가 이미 다 물어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다는 의견이었어.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해"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 나머지는 말을 안 해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메간이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러자 옆에 있던 트레이시가 끼어든다.

"퓨우우..."

그녀의 버릇인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먼저 낸후 그녀는 말을 이었다.

"메간? 어디에도 쓸모없는 그 멍청하고 게으른 메간?"


사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메간은 여길 떠나게 될 거야. 그동안 일이 좀 있었어. 그러니 메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일인지는 말을 안 해줘서 알수 없었지만 그동안 사라가 왜 메간을 투명인간 취급을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사라는 그동안 나에게 혹독한 매니저 트레이닝을 몇 달 동안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라는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트레이시가 잠깐의 침묵을 깬다.

"그냥 해 민. 그리고 스몬의 산장일도 그만둬야지. 어차피 그 산장은 팔려고 내놓은 상태이고, 폴이 무리해서 민에게 일자리를 주라고 해서 민이 일을 하고 있는 건데 잘 된거지 뭐.... 그리고 연봉은 얼마인지 들었어? 아마 지금 급여보다 두 배는 더 많을걸"

트레이시는 나의 새 일자리 문제로 나보다 더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평소 과묵한 그녀답지 않게 그녀는 아무런 여과기 없이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충격에 충격을 더한 상태가 되었다.

'무리해서...'

'무리해서...'


" 사람이 필요 없었다는 말인가요?"

" 퓨우우...민도 봐서 알 거 아냐? 산장엔 손님도 없는데, 아무리 스몬이 몸이 불편하다 해도 아직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걸.."

나는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어 눈을 감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쓸모 있게 쓰이고 있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했었는데, 결국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동정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내게 일부러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무리하면서까지.. 그런데 왜? 이유 모를 쓰림이 가슴에서 뭉쳐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동안 그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일을 잘 하고 있었다고만 생각하며, 눈치없이 굴었던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떠 올라 수치스러웠다. 폴이나 스몬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든 것만 같아 원망스럽기만 했다. 나는 그때 더욱 못나지고 있었다.


목요일인 다음날 ,나는 사라에게 매니저 일을 받아들이겠다 말을 했다. 하루하루 일당을 치뤄 받던 내게, 연봉이라는 단어는 내가 거부 할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단어였다. 그리고 처음 1년은 정직원이 아닌 임시직으로 일을 하겠다고 했다. 1년동안 내가 일 하는걸 지켜 본 후에 그때도 피터가 만족하면 그때가서 정식으로 계약을 하자고 나는 사라에게 말을 했다. 사라는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러라고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레이시 말처럼 산장에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되겠다 하는 나의 결심이 섰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크게 기뻐 했으며 올해까지는 나와 함께 농장에서 나를 도울것이라 약속했다. 더 없이 든든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금요일 오후에 일을 조금 일찍 끝낸 나는 산장을 찿았다. 당장 다음주 월요일 부터 일을 나오지 못한다는것을 빨리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고없이 들른 산장 키오스크엔 스몬이 보이질 않았다. 잠시 주차장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폴의 하얀색 토요타 하이럭스 트럭은 주차 되어 있었지만, 스몬의 미쯔비시 SUV는 보이지 않았다. 스몬과 대화를 하는편이 편할것 같아 다음에 다시 오는것이 좋을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기 위해 차에 들어가 시동을 켰을때 폴이 산에서 내려와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던 그의 손엔 들꽃이 한아름 들려 있었다. 하지만 사라가 말했던 상자속을 뛰쳐 나온 호랑이처럼,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그것을 닮아 있었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