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도 없는 폭우속 산길을 달리다.

파란 방갈로의 노래 2

by 블루

내가 이 농장에서 하는 일은 말을 관리하는 전문 관리사도 아니고, 조련사도 아니었다. 자격도 없고 경험도 없는 나에게 농장주인 피터와 마리는 고맙게도 일을 주었다. 내가 하는 일은 정해진게 아니어서 모든 일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또 그럼에도 일이 생기면 어떤 일이든 해내야 하는 그런 이름도 없는 직책이었다.

때로는 울타리 수리도 해야 했고, 말들의 분뇨도 치워야 했으며, 일이 없을 때는 작은 토요타 트럭을 타고 넓은 농장을 돌아다니며 나의 일감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했다. 어느 곳에서 일하는 것 이상으로 수입이 나았으므로 나는 농장 어느 누구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기를 쓰고 악착을 떨었다. 어느 일이 주어지든지 나의 대답은 주저 없이 할 수 있다였고 또 용케도 나는 그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나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더 이상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대로 쓸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모든 안간힘을 쏟아 부었다. 수, 목, 금 이렇게 3일을 농장에서 일을 했고, 일이 없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자리를 나는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화기 속 스몬의 목소리는 더 없이 다정했다. 시간이 날때 아무때나 오라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지금 찿아가겠다고 하였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듯 했으나 그러라고 해 주었다.

오늘이 아니면 그 일자리는 누군가에게 뺏길수도 있을것만 같은 나의 조급한 마음때문이었다. 그 일이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수락을 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오후 3시. 부지런히 운전해서 가면 3시 30분까지는 도착 할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옷도 갈아 입지 못한채 더러워진 진한 밤색의 셔츠와 더 진한 밤색의 타이트한 바지를 입은 그 날 작업복 그대로였고, 흙만 대충 털어낸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내가 새로운 일자리 면접을 보기위해 했던 준비는 하루종일 비 맞고 일하느라 헝클어진 긴 머리를 다시 풀어 손가락으로 대충 빗은후, 머리 뒷 쪽으로 질끈 고쳐 묶는것이 다였다. 다행히 비는 잠시 그쳐주었고 운전에 서툰 내가 운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구불구불한 도로위를 곡예하듯 악셀과 브레이크를 적당히 리듬있게 번갈아 밟아가며 계속해서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GPS는 산속으로 진입하는 비포장 도로로 안내했다.

오랫동안 내린 비로 인해 산이 있던 오른편에는 도랑이 만들어져서 황토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흐르는 물은 마치 누런 구렁이가 꾸물거리며 계속해서 나를 따라 오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간간히 작은 나무들이 넘어져 길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내 머릿속엔 여전히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밖에는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GPS가 더 이상은 작동되지 않고 한 줄의 구불한 길만 그려진채 멈춰 있었다. 싸구려 GPS라서 이런걸까 라는 생각에 좀 더 가격을 치루고 좋은것을 사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제서야 살짝 겁이 났다. 돌아가야할까? 망설이는 나와는 다르게 나의 녹슨 포드 트럭은 거친 비포장 산길을 이리저리 씰룩거리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길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수 있는 폭으로 좁아지고 있었고, 길 왼편은 빽빽히 꽉 들어찬 키큰 나무들의 꼭대기가 보일 정도로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낭떨어지였다. 이젠 정말 차만 돌릴수 있는 공간만 나온다면 차를 돌려 되돌아 나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깊게 구부러진 길을 따라 돌자, 드디어 평평하고 넓은 땅이 보였다.

이제 산길은 끝난것이었다. 나는 저절로 휴우..하며 참았던 숨을 쉴수 있었고, 내 몸이 긴장에서 풀어짐을 느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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