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갈로의 노래 3
산속의 낮은 언제나 생각보다 일찍 끝난다. 그제서야 4시도 채되지 않은 시간에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 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길게 이어져 차가 다닐수 있게 만들어 놓은 길바닥엔, 작은 자갈들이 깔려있어 타이어는 추르르 소리
를 내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는 크고 작은 돌들이 길과 잔디밭의 경계를 알려주고 있어서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주변이 온통 거대한 유칼립투스 나무들로 둘러싸인 통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서 볼때보다는 조금더 큰 규모의 단층 키오스크는 비에 젖어 마치 방금 오일을 발라 놓
은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껏다. 얼마전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나의 낡은 포드 지붕에 떨어져 투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 가야할 생각을 하니 잠시 난감했지만, 역시나 일자리를 얻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다시 부푼 나는 흡! 하는 작은 기합과 함께 차 안에서 튀어 나와 키오스크로 달렸다.
원목의 결을 그대로 살린 무거운 키오스크 입구문은 커다란 검은색 장석과 함께 멋스러웠지만, 문을 열기위해 안쪽으로 밀었을때 느꼈던 그 묵직한 무게감은 위화감마저 들게 하였다. 들어선 키오스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대신 문 꼭대기에 달린 동으로 만든 소방울이 키오스크 안에 청아하고도 맑은 방울소리를 내며 사람이 들어 선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 방울소리는 문이 닫히며 멈추었지만, 여전히 여운은 남아 키오스크 실내 구석구석을 오래도록 돌아다녔다.
역시 통원목으로 이루어진 실내 내부는 천장이 아치 모양으로 높아 탁트인 개방감을 주고 있었고, 붉
은 빛이 도는 STAIN(나무에 바르는 색이 섞인 천연오일) 을 실내 전체에 발라 중후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램프모양의 조명기구들이 걸려있었고 조금은 어두운듯한 조명의 밝기로 인해 실내의 붉은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반사하고 있었다. 방울소리를 들어서인지 바(BAR)로 보이는 공간에 벽이 조금 열리며 스몬이 나왔다. 그녀는 내가 알던 미소로 나를 반가워했다.
"이 비를 뚫고 오다니 민은 참 어쩔수 없는 사람이네요"
그녀는 마치 나에 대해 잘 안다는듯한 표현을 썼다. 인삿말이겠지.
"죄송해요. 제가 오늘이 아니면 이곳에 올 시간을 낼수 없을것 같아 이렇게 왔어요"
사실이 아닌 대답을 했다.
"차 한잔 하겠어요?"
무슨일을 주려는건지, 빨리 하겠다 하고 더 어두워지기 전 이 산속을 나가야 했던 나는 맘이 급했다. 괜찮다 거절을 하려고 할때였다. 다시 청아하고 맑은 방울소리가 아까보다는 좀 더 큰 소리로 울리던것이...
어두운 키오스크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기름을 몇 겹이나 칠하고, 바른 무거운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OIL SKIN 이라는 호주 전통의 비옷을 실생활에서 정말로 입고 있는 사람을 본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역시 그의 넓은 어깨를 다 가릴것만 같던 챙이 넓은 가죽모자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에서 굵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나를 흘깃 보는것 같았지만 이내 모자를 벗어 가죽코트에 툭툭 털었다. 바닥은 금새 그의 몸에서 떨어진 빗물로 흥건해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코트를 벗어 입구의 옷걸이에 걸었다. 코트를 벗자 파란색 체크무늬의 짧은 소매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를 보는건 마치 커다란 곰이 가죽을 벗으니, 날렵한 인간으로 변신 하는 마법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차 한잔을 해야겠어"
인간으로 변신한 그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스몬은 나에게도 찻 잔을 내밀었다. 그는 내가 앉아 있던 바 스툴에서 두 개 떨어진 스툴에 앉았다. 스툴은 약간 높아서 앉을때부터 불편했고, 지금 저 남자가 끼어 드는 순간부터는 그 자리가 더 없이 불편해서, 힘을 주고 있던 다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 남자가 들어섰을때 부터 진동하던 머스크 향으로 키오스크 안은 더 없이 가라 앉는것 같았고, 만약에 내가 눈을 감고 있었더라면 크리스마스의 한 가운데에 들어 앉아 있었다고 착각할 만큼 남자는 겨울 냄새를 몰고 들어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머스크 향은 남자가 입고 있던 비에 젖은 Oil Skin 코트에서 나던 냄새였다.
"나를 기억 못하나요?"
스몬을 마주하고 앉은 그는 머리만 살짝 돌려 내게 물었다.
나는 이 곳의 유일한 동양인이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알지만, 사람들의 얼굴을 좀처럼 바라보지 않던 당시의 나의 습관으로 인해, 나는 그가 누군지 급하게 떠올릴수 없었다.
"작년..폴로경기..."
그의 몇 마디로 나는 그가 누군지 알것 같았다.
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