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색깔이 싫어...

호주 고스트 이야기 1

by 블루

다소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돌아 나가 주세요.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근방에서 유일한 페인트쟁이 프랭크가 밤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 했다. 페인트를 밤에 칠하냐고 물었더니, 유치원이라서 애들이 있는 낮에는 칠할 수 없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밤에만 칠할 수 있다 한다. 보통 오후 여섯 시에 시작해서, 밤 12시에나 끝난다고 했다. 나는 농장일을 끝내고 집에 들러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옆집 데비와 레오 부부에게 아이들을 봐 달라 부탁하고 당분간 페인트칠하는 곳에 따라다니기로 하였다. 그때는 어차피 내가 불면증으로 한시나 두시쯤 잠이 들 때이기도 해서 나는 그 일이 고맙기까지 했다.


유치원은 2층구조였고, 1층은 커다란 아이들 방이 복도 양쪽에 나뉘어 여섯 칸과 몇 개의 화장실과 창고 그리고 입구 쪽에 사무실이 있었고 기다란 복도와, 복도 끝에는 식당과 주방이 있었다.

2층은 아이들 출입이 금지되어, 사무실과 선생님들 쉼터등 비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선생님들이 주로 쓰는 공간이라고 했다. 페인트는 1층만 칠하는 것이라 했다. 내가 하던 일은 유치원의 여러 가지 물건들을, 페인트를 잘 칠할 수 있게 옮기고 정리하고, 바닥에 커다란 천을(DROP SHEET) 깔고, 책상이나 아이들 용품에 비닐을 씌우기 등 역시 잡다한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공간이라 먼지 없이 해 달라는 원장의 당부로 나는 주로 따라다니며 청소기를 돌리며 청소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보통 하룻밤에 방 하나씩 칠하기로 계획되어 있다고 하였다. 인부는 프랭크를 비롯 남자 세 명이 더 있었고 나, 이렇게 다섯명이었다.


둘째 날에 있었던 일이다.

프랭크와 인부 1 그리고 나는 커다란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인부 2와 3은 복도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청소기를 막 돌리고 있는데, 인부 2와 3이 누군가에게 쫓기듯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파란색에 가까웠고 무언가에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얼른 청소기를 멈추었다. 놀란 그들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욕을 하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 OH!! FUCK...!!! OH!! FUCK!!!"

프랭크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그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덜덜 떨었다.


잠시 후 프랭크의 호통으로 조금 진정한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들이 복도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위층에서 어떤 여자가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 인부 2와 3은 선생님 하나가 밤늦게 남아서 위층에서 일을 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한다. 그러나 그 중얼거림은 랩을 하는 것처럼 빨랐고,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했다. 둘은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I HATE THE COLOUR" 난 그 색이 싫어.

"I HATE THE COLOUR" 난 그 색이 싫어.

"I HATE THE COLOUR" 난 그 색이 싫어.

라며 작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반복을 하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인부 2와 3은 조금은 꺼름직했지만 불 꺼진 2층에 함께 올라가서 불을 켜고 방을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딘가에 숨어서 이들을 골탕 먹이려 드는 여자를 잡을 생각으로...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2층 모든 방의 불을 켜고 샅샅이 찾아도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복도로 내려왔고, 자신들이 잘못 들은 소리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페인트 붓을 들고 막 칠을 하려는 그때, 분명 아무도 없던 2층에서 또다시 더 빠른 랩을 하듯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이 둘은 우리가 있던 방으로 뛰쳐 들어온 것이라 했다. 잠시 모두 아무 말이 없었고, 프랭크와 인부 1은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만, 인부 2와 3의 모습을 보고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프랭크를 선두로 인부 1이 복도로 천천히 나갔다. 그들은 방의 문을 열어 고정시키고 2층으로 올라가는 컴컴한 계단 밑에 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 하나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한 10여 초가 흘렀을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캄캄한 2층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프랭크가 돌아서며

"아무 소리도 나지 안..."

라고 하려고 할 때 나도 분명 들었다. 분명 가느다란 여자 목소리를... 나는 그 여자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들을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 바람소리와도 닮은 여자 목소리가 2층에서 나던 소리였다.

모두 잠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누구 하나라도 비명을 지른다면 분명 아비귀환이 되었을 순간임을 우리 모두는 암묵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 너희들 먼저 나가"

프랭크가 방에 있던 인부 2와 3 그리고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나는 들고 있던 청소기를 바닥에 소리 없이 내려놓고 인부 2와 3 과 함께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 가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바로 프랭크와 인부 1이 나왔다.

주차장에 집결한 나는 집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일을 하던 중간이었고, 아이들 방이 아직도 페인트와 연장들 그리고 집기들이 모두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으므로 그대로 돌아가지는 못 한다며 유치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때 시간이 자정을 넘긴 12시 40분이었다. 통화를 마친 프랭크는 나는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집까지는 30여분을 운전해서 가야 했고, 그 당시 그 기분으로는 혼자서 차를 운전하는 것도 무서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십여분 정도 기다렸을까? 잠옷 가운을 그대로 걸친 유치원 원장이 도착했다. 그녀는 예상외로 침착해 보였고, 다시 한번 우리가 겪었던 일을 프랭크로부터 전해 듣고는 오늘은 일단 일을 하지 말고 정리만 부탁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에게 묻는다.

" 정말로 그녀가 색깔이 싫다고 했나요?"

인부 2와 3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원장은 마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기라도 한다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었다. 원장은 앞장서서 들어갔고, 우리들은 그녀를 따라 들어가 우리가 일을 하던 물건들을 밖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사무실 앞에 꼿꼿이 서 있던 원장이 약간은 큰 목소리로 말을했다.

" 지금 새로 칠하는 색은 중지하시고 예전 색과 똑같은 색으로 칠해 주세요. 그 추가 비용은 제가 더 낼게요"

예전 색은 노란색이 섞인 크림색이었고, 새로 칠하려 했던 색은 회색이 조금 섞인 흰색이었다.


다음날 나는 일을 따라가지 않았다. 도저히 그곳에 갈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서운 곳에 아이들을 맡기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안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참 후에 우연히 만난 프랭크에게 물었다. 그리고 프랭크의 얘기를 듣고 나는 눈물이 났다.


원장에게는 두 살 위의 언니가 있었다 한다. 원장과 언니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둘은 똑같이 (child care) 유아교육학과를 공부했고, 같이 유치원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언니는 암으로 사망했고, 지금은 동생이 혼자서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다 했다. 언니가 죽기 전 그랬다 한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는 죽어서도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그리고 처음에 유치원을 열게 되고, 페인트를 칠해야 했을 때 원장은 언니와 어느 색을 칠할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언니는 크림색을, 원장인 동생은 회색을... 그때, 아이들에게는 크림색이 정서에 더 좋은 거라는 언니의 고집으로 크림색을 칠한 거라고 했다 한다. 회색은 아이들에게 우울한 색이라며 언니는 말했다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죽은 언니가 아직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수호천사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이 그 언니에게서 각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 생각하니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 목소리가 애틋하게 들렸던 것도 같았다. 바람과도 같던 그 짧고 가늘던 목소리.... 어쩌면 우리는 정말 바람소리를 잘못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프랭크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그 언니가 그렇게라도 남아서,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들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 너무도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