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시작 (마지막 화)

파란 방갈로의 노래 16

by 블루

나의 허락도 구하지 못한 채 내 차에 뛰어든 사람들은 아버지와 두 남매였다. 10대로 보이던 여자아이는 계속해서 울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당겨 어깨를 감싸주며, 토닥여 달래주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불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울어서인지 무척 붉어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 별 말이 없었다. 말은 서로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를 염려하고 걱정하던 것들로 인해 마음만은 그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각자 서로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렸다.


도착 후, 레오와 데비 부부는 우리 아이들과 대피소중 한 장소였던 어느 교회에 있음을 전화통화로 알렸다. 나는 그 교회로 찾아갔다. 내 예상보다 적은 사람들이 있었다. 불을 피해 대피를 한 사람들보다, 사람들을 돌보려 급하게 꾸려진 자원 봉사자들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우리 아이들은 내 차가 교회 주차장에 주차를 하기도 전에 뛰어왔다. 나는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았다. 아이들은 잠시 말이 없이 울기만 하였다.

" 엄마가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들은 내게 안겨 울었다. 내 옷을 꼭 잡은 그 작은 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너희 둘하고 안 떨어질게.. 약속해.. 미안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놓지 못한 채 안고 있었다.

레오와 데비 부부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 다행이에요. 아이들이 너무 걱정을 하고 있어서 보기 딱할 정도였어요."

데비가 말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감사했다.

" 우리는 여기서 좀 떨어진 도시에 사는 아들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민도 아이들과 같이 가요. 이미 우리 아들도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레오와 데비는 여기 말고 이미 갈 곳이 정해졌음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어 준 것이었다.

" 말씀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아이들과 여기 교회에 있을게요. 아마 좀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고요.."

레오와 데비 부부는 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몇 번을 더 청했지만, 그들은 나를 다시 한번 꺽지 못했다.

" 민은 참 고집스러운 사람이군요"

그들은 안다. 나와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를 교회에 그렇게 남겨두고 쉽게 떠나지를 못했던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해 준 저녁을 먹고, 교회 화장실에 마련된 샤워시설에서 우린 씻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아이들 가방에서 잠옷을 꺼내 아이들에게 갈아입혔다. 대피자들에게 나누어진 침구류 세트를 받아, 숙소로 지정된 교회 홀 바닥에 깔았다.

바닥은 카펫으로 깔려 있었지만 얇은 담요 한 장으로는 밤사이의 추위가 걱정되었다. 둘러보니 자원 봉사자들은 이미 교회를 떠났고, 교회엔 우리 셋만 남아 있었다. 다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낼 곳을 찾아 대피소를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이 받아 놓은 침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침구들을 끌어와 바닥에 깔고 새로 받은 새 침구들을 맨 위에 깔은후 그 위에 아이들을 눕혔다. 그리고 나의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핸드폰은 이미 방전이 되어 언젠가부터 꺼져있던 상태였다. 아침에 정신이 없어 충전기를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 엄마 우리 이제 집 없어?"

작은 아이가 묻는다.

" 아니야.. 우리가 왜 집이 없어? 이제 불이 꺼지면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지금 소방대원 아저씨들이 열심히 불을 끄고 있는 걸... 엄마가 봤어"

나는 아이들 가운데 누워 아이들을 꼭 안았다. 아이에게 밝은 목소리로 대답은 하였지만 나도 걱정이 되었다.

" 여기 조금 무서운데..."

아이들은 홀의 일부분이 불이 꺼져 있어서인지, 커다란 홀을 무서워했다. 우리 셋만 있기에는. 너무 큰 홀이었다.

"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야.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집에 있는 거지.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은 하였지만, 사실은 나도 너무나 무서워하고 있었다.. 교회의 홀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내야 할지 겁이 났던 것이다. 만일 집이 다 탄 것이라면 돌아갈 곳도 없어진 것이다. 비록 레오와 데비 부부에게서 세를 들어 사는 집이었지만, 그곳이 우리들이 지낼 수 있던 유일한 "" 이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피터의 농장에서의 일도 이미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임은 분명한 것이었다. 돌아갈 집도, 일자리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도망쳤던 그 밤처럼 나는 다시 길을 잃은 것이었다.


하루 종일 걱정을 하며 긴장했던 아이들은 나의 낮게 흥얼거리던 찬송가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제야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안했다. 나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죄책감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한국의 엄마 말씀처럼 아이들은 돈 많은 아빠에게서 자라게 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게만 해 달라는 나의 이 작은 소망조차도 들어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나는 기도했다.


그때였다. 조용하기만 하던 교회에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홀밖에서 들려온 것이... 나는 우리처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대피소를 찾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홀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스몬이었다. 홀에 들어선 스몬은 급하게 두리번거리며 홀을 훑었다. 그리고 스몬은 교회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그리고 나를 꽉 안았다.

"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를 안은 그녀의 가녀린 몸은 가엾게도 몹시 떨고 있었다.

" 오.. 민.. 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제야 스몬 뒤에 서 있는 트레이시가 보였다.

" 전화는 또 왜 안 되는 건데... 우리는 민이 그곳에서 못 빠져나온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스테이시는 거의 화가 나 있었다.

" 하루 종일 대피소란 대피소는 다 찾아다녔잖아.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겨우 데비하고 통화하고 나서야 알게 된 거야"

스테이시는 핀잖을 주는 듯 말은 했지만 잠든 작은 아이를 안아 올렸다.

" 애들을 대체 왜 이런 데서 재우겠다 생각한 거야..

어서 일어나... 짐 챙겨.. 짐이랄 것도 없겠구먼..."

스몬은 계속해서 나를 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나도 그제야 울음이 다시 터졌다.

" 미안해요..... 스몬... 미안해요.."

하루먼저 피신한 스몬과 스테이시가 대피소 어딘가에 잘 있다는 통화를 어제 했었기에 , 나는 오늘 이들 걱정은 하지 못한 채 넘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후, 조금 진정된 우리는 서로를 놓아주었고, 나는 잠든 큰 아이를 깨워 스몬을 따라나섰다. 그들은 우리를 시내의 한 호텔로 데려갔다. 스몬은 이미 어제부터 숙소를 마련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연락이 되지 않자 하루 종일 우리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혹시나 우리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걱정을 하며.. 그 날밤 나는 스몬의 손을 잡고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스몬은 밤새워 지켜주었다. 예전의 그 누구처럼...


우리는 그 호텔에서 스몬의 도움으로 2주를 같이 지냈다. 지내는 동안 나는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무사했지만, 집주인인 레오와 데비가 사는 본채 일부분이 불에 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농장 또한 건재하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딜란의 맞불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수고해 준 소방대원들의 노고로 농장은 화마를 비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2주 동안 방갈로로 들어가는 길은 통제가 되고 있었고, 정확한 방갈로의 피해 현황은 알 수가 없었다.


드디어, 스몬과 나는 15일이 지난 후, 방갈로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리케이드가 치워지자, 무거운 마음으로 방갈로를 찾을 수 있었다. 방갈로로 진입하는 산길에서부터 모든 것은 불에 타 밤처럼 어두웠다.

우리는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 차를 세웠지만, 어느 누구 하나 차 밖으로 선뜻 나가지를 못했다. 붉은 마녀가 휩쓸고 간 자리는 온통 검은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양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키오스크도, 방갈로들도 모두 불에 타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들이 있던 자리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재들만 남아 있었다. 나는 떨고 있는 스몬의 손을 놓고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방갈로들이 있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폴의 방갈로도, 파란 방갈로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오로지. 검게 그을린 나무들만 시커먼 판화처럼 서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혹시나 들릴 수도 있을, 하지만 들리지 않을 소리를 들어 보려 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며 내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마치 바람이 되었다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그가 바람이 되었다 생각할 것이고, 새라도 울었다면 새가 되었다 여겼을 것이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건 그가 정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닌, 그렇게 믿고 싶었을 내 마음이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그렇게 내 마음에서 언제고 살아 가리란 걸.... 그리고 그제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나 여기 있을게요... 언제든지요..'

어느새 다가온 스몬이 내 옆에 섰다. 나는 스몬에게 말했다.

" 그거 아세요? 한국에선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생전에 쓰던 물건들을 태워 준답니다. 그걸로 죽은 사람은 물건을 받고, 천국에서 잘 살아간다 믿는답니다.. 아마도 이 방갈로들은 폴이 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쯤 폴은 방갈로들을 받고 수리하고 있느라 바쁠지도 모르겠네요"

나의 시답잖은 농담 같은 그 말에 스몬의 눈이 반짝였다.

" 그래요? 정말 그런 것이라면 좋겠군요.. 정말로.."


스몬은 작지만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 우리 다시 시작해야 돼요. 알고 있죠?"

나는 스몬을 바라보았다.

" 준비 됐어요? 민?"

스몬의 갈색 눈동자는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 네.. 저도 준비 됐어요"


우리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뿌리만은 살아 있던 유칼립투스 나무들처럼 그렇게 강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맹세했다. 몇 번이라도 나는 다시 시작해 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파랗게 올라와, 예전처럼 푸르를 이곳에서 나는 다시 흥얼거릴 것이라고.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