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평균 초혼 및 초산 연령이 매년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숫자 안으로 무사히 진입했다.
서른의 문턱을 넘어서자 정말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이상 남들이 평균적으로 사는 삶을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결혼에 성공하고 적당한 신혼기간이 지나자 이젠 자녀계획이 화두로 떠올랐다.
또래들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아이를 갖는 부부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자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첫 신혼집은 각자 직장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둘의 직장이 서울의 끝과 끝이라 임신 계획과 함께 집 위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두 시간을 길 위에서 버텨야 하는 거리였다.
남편 주변에서 임신 후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반복되자 남편이 제안을 하나 해왔다.
"당신 임신해서 회사 다니기 힘들 텐데 당신 회사 근처로 가자. 내가 조금 더 고생할게."
남편의 배려 섞인 제안에 나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고, 우린 열심히 찾은 끝에 내 회사 근처의 전셋집을 구했다.
이사를 마친 뒤 한 달 남짓은 일종의 유예 기간 같았다.
별다른 균열 없이 평온한 일상이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임신이 기대보다 늦어지자 남편의 태도에는 날 선 조급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한 달 한 달 실패의 기록이 쌓일 때마다 그는 집안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고,
그 적막에 짓눌린 채 반년을 버티던 나는 결국 조심스럽게 휴직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회사에 야근이 많고 회식도 많아서 난임휴직을 써볼까 하는데 어때?"
반년 간 소식이 없으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회사 다닐 땐 스트레스 때문에 안되다가 퇴사를 하거나 휴직을 했을 때 자연스럽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제안을 해 본 것이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병원의 도움을 받던지 하는 게 먼저지 휴직부터 생각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다고 했다.
나는 반년 전 산전검사도 정상으로 나왔기에 한 번 더 실패하면 병원에 가보기로 일단락되었다.
남편이 화까지 내던 모습은 내게 큰 상처였지만 출퇴근이 힘들어서 예민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이런 마음을 안 것인지, 그 이후로 금방 아기가 찾아와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