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시기해서 온다는 꽃샘추위에, 나는 임신을 확인했다.
너무 기다렸던 임신이라 병원에 가도 아기집 확인이 어렵다는 극 초기 단계에 확인이 되었다.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내게 구원같이 찾아와 준 아기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얼리 테스트기로도 희미하게 보이는 그것을 서랍에 넣으며 안전해 지기까진 혼자만 알기로 했다.
극 초기 때, 시댁 방계 친척들 모임이 있었다.
나는 가서 상냥한 며느리 역할을 했다. 내 뱃속에 작은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시이모님이 한마디 하셨다.
"애 키우기 힘들더라. 너네는 낳지 마."
웃으면서 대충 넘기는 남편을 따라 나도 웃어넘겼다.
모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친척 모임이 있던 다음 날 나는 남편에게 임신했다고 알렸다.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너무 고맙고, 앞으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그저 예전의 다정한 남편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좋을 뿐이었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자 지독한 울렁거림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입덧이라고 했다.
다 알고 시작한 일인데도 임신이 후회될 정도로 강력한 고통이 찾아왔다.
입덧약 처방을 받아서 먹어도 그때만 잠시 눌리고 다시 구역질이 나는 게 반복되었다.
임신 선배들이 시댁에는 입덧약 먹는 걸 말하지 말라고 해서, 임신 사실을 알릴 때도 입덧은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조차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헛구역질 탓에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는 입덧약을 처방 가능한 한도까지 먹으며 버텨냈다.
그렇게라도 해서 일상을 지탱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주변에는 약조차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 입원까지 한 사람들의 후기를 검색하며, 나는 그들의 처절한 기록에서 묘한 위안을 얻었다.
내 입덧은 무려 17주가 지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