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몸을 움직이자, 내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16년 동안 정지했던 몸을 이끌고, 나는 한 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올려놓았다.
차창 밖 풍경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흔들렸다.
오래된 내 안의 리듬이 다시 깨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두 발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몸을 기댄 채 올라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심장은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5번 출구의 계단을 오르고 또 한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지나면,
내가 연습할 그곳 — 낯설지만 익숙한 무용실의 복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발을 벗고 갈색 마룻바닥 위를 걷는다.
나는 매번 세상 당당한 척 걸어가지만,
사실은 부끄러움을 온몸에 두른 채 콩알만 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선다.
음악이 흐르는 스튜디오 안에 아무렇지 않은 양 바를 옮기고
나는 마치 여전히 세련되고 멋진 사람인 양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하지만,
몸은 전공자와 일반인 그 사이 어딘가에서 버거워한다.
멈춤이 마법처럼 풀리고,
움직임이 나를 이끌기 시작할 때 굳어 있던 세포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몸의 온기가 돌아오고, 나는 다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마흔의 나이에,
‘내 안의 리듬을 다시 느낀다’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웠다.
첫날, 몸은 돌덩이 같았다.
동작을 따라가지 못해 헉헉대며 주저앉고, 결국엔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자책이 들 새도 없이, 살기 위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춤은, 멈춰 있던 나를 자꾸 움직이게 했다.
생각도, 몸도, 인생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때 무용은 내 삶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시작했고,
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예중 진학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족 중 유일하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다.
빨간 딱지가 붙은 집에서도,
나는 그저 엄마가 뭐든 나를 뒷바라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를 보내지 않은 이유가 아까워서인 줄만 알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무용을 잠시 쉬었다.
엄마가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는지,
내가 실증을 느껴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후자였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무용학원을 취미처럼 들락거렸다.
예술 한다는 이유로 긴 머리를 찰랑이며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던 시절,
나는 겉만 화려한 전공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용을 한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보여지는 나’로 살고 있었다.
갑자기 예고에 가고 싶었다.
몸으로 감정을 말하고, 움직임으로 나를 증명하던 시간들이 자꾸 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바쁘게 일하는 엄마에게 그것을 요구할 용기가 없던 중3 시절 이었다.
결국 원서를 직접 들고 가 시험을 보겠노라 선언했고,
개인 레슨 한 번 없이 예고에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고에서 줄곧 노는 일을 담당하며 전공과 멀어지고자 했다. 나의 부족함과 마주하는 시간이란 꽤나 마음 아픈 일이었기에,
그래서 나를 제대로 못가르킨 부모를 탓하며, 더 하지 못한 상황을 탓하며 1,2 학년을 보냈다.
어떻게 고3때 마음을 다잡았는지 새벽 4시부터 기상해서 12시까지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할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더 할 만큼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과 대학원, 무용단을 거치며
나는 계속 성장을 말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모든 것이 완전히 멈추었다.
하루는 밥을 짓고, 하루는 빨래를 널고,
하루는 아이 숙제를 봐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몸은 늘 분주했지만 마음은 텅 비어갔다.
무엇이라도 다시 시작해보려 해도
결국 돌아오는 자리는 언제나 아이들 곁이었다.
“이제 무용은 안 해?”
누군가의 질문에 “이제 무용은 끝났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 말이 얼마나 차갑고 잔인한지, 그때는 몰랐다.
몸이 멈추면 마음도 멈춘다는 걸,
나는 천천히, 온몸으로 깨달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자꾸 멈춰지는 탓에 겁이 났다.
‘나’라는 존재는 점점 뒷전이 되어갔다.
“왜 이렇게 아이를 많이 낳았을까…”
스스로에게 내뱉은 그 말에 서글퍼진 적도 많았다.
내가 선택한 삶인데도,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책을 읽으며 ‘지금은 준비하는 단계야’라고 위안했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라는 어려운 직업을 잠시 내려놓기 전엔
나를 찾는 일이 참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16년만의 몸을 이끌고 몸을 움직이던 몇달이 지난 그 어느날
새벽 렛슨을 하기위해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며 우연히 ‘움직임 명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단어가 이상하게 내 안을 울렸다.
발란스 보드 위에 서서, 내 안의 나와 마주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만났다.
멈춰 있던 숨이 깊이 들어오고, 손끝이 떨리며 눈물이 났다.
나는 내 안의 리듬을 다시 느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내 안의 생명을 깨우는 움직임이었다.
새벽 6시의 감성일지는 모르겠다.
그동안의 허세와 비교,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 조용히 녹아내렸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움직여야 세상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다시 나의 언어가 되었고,
감사는 그 언어를 이어주는 숨결이 되었다.
살아있는 그 존재만으로 난 큰 가능성이 있다는걸,
이 자체만으로 참 대단하다는걸
이렇게 멈춰있던 몸을 움직이자 비로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