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 중개사님, 저는 품을 팔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중개 :???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저의 오랜 고객입니다.
사는 곳이 멀다 보니 쉽게 다녀가지 못하고 아파트 관리 일체를 중개사에게 일임해 두신 분입니다. 임차인이 나가면서 보수할 곳이 생겨 알려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중개사님! 저는 제 일을 해야 하니 저더러 오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품을 팔 수가 없으니 돈을 달라고 하면 드릴 테니 도와주세요."
'품'이란 단어에 빵 터졌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 글자입니다.
'품 팔러 간다', '품팔이' 등 70년, 80년대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단어입니다. 시골을 가도 '품을 구한다'느니, '품삯이 얼마냐'는 등 품에 관한 대화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도 몸으로 일하는 분들에겐 '품'이란 단어가 상당히 익숙하지 않나요?
하도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단어에 제가 빵 터지니 고객도 좀 무안했는지~~
"저희 부모님이 '품'이라는 말을 자주 하셔서 저도 모르게 나왔어요. 그렇게 웃기세요?"
"네~~"
"중개사님은 이런 단어 많이 듣지 않으셨나요?"
"듣기야 했죠~ 하도 오랜만에 들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네요"
"하하하~~~"
"그럼 품을 제가 팔면 되나요?"
"네~~ 품 많이 파세요. 품 값은 제가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중개사가 한 번 더 움직이고 한 번 더 신경 써 주면 되는 일입니다. 업자 불러 어디를 어떻게 수선할지 알아보고 임대인과 상의하여 보수하면 됩니다. 이때 중개사의 품이 좀 들어가겠죠? 고객님이 말씀하시는 '품' 말입니다.
새로운 임차인을 맞이하기 위해 집 상태를 점검하고, 고치고, 정리해 주는 일은 임대인의 일입니다. 이 아파트의 임대인은 돈을 깍쟁이처럼 아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인색한 분도 아닙니다. 쓸 곳에 써야 한다는 의견이세요. 그리고 임차인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착한 임대인입니다.
다행히도 자연 노후화 된 집이라 큰 수리를 요하는 부분은 없었고, 도배와 고장 난 부분만 고치면 될 것 같아요. 새 임차인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끝.
전세나 월셋집을 보는 고객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갖춘 집은 없어요.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부족했지, 넘치는 집은 없습니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잘 돼 있어도 컬러에 대한 불만, 재질에 대한 불만, 기왕이면 이렇게 하지 등등 많은 의견을 주십니다.
품을 팔지 못할 정도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임대인의 사정도 이해가 됩니다. 근거리에 있는 중개사가 임차인을 넣어야 하니 고객의 품을 대신 팔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