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동네는 산 아래 아주 작은 동네입니다. 뒤로는 큰 산이 있고 그 산아래는 '곱돌'을 채굴하는 광산이 있습니다. 광산에서 나오는 '곱돌'은 송아의 최애 물건입니다. 곱돌로 땅바닥에 그으면 하얗게 선이 그러지는 돌멩이입니다. 광산 근처에 곱돌 자투리가 상당히 많아 사촌 오빠가 많이 주워다 줍니다. 송아는 그것으로 동네 마당에 그림을 그려놓고 친구들과 놉니다. 송아가 곱돌이 많아 친구들은 하나라도 얻어보려고 송아한테 아부를 하기도 합니다 ㅎㅎㅎ
곱돌 나오는 광산에서 한참 아래는 과수원이 있습니다. 사과 과수원입니다. 송아의 할아버지 사과 농장입니다. 사과 농장에 송아네 집이 있습니다. 과수원 아래쪽에 우물이 있고 장독대도 있고, 송아의 그네도 있습니다. 나무에 메인 그네에서 송아는 사과나무향을 맡으며 그네를 타곤 했습니다.
과수원 한편으로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 있습니다. 개울물은 졸졸졸 돌과 돌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하루종일 주위의 심금을 울려줍니다. 개울물 소리가 밤에는 자장가입니다. 그런 개울물을 송아는 참 좋아합니다.
낮에 송아는 종종걸음으로 엄마를 따라갑니다. 엄마와 외숙모와 함께 가는 곳은 개울가 빨래터입니다. 빨래터는 큰 돌이 있고 큰 돌 주변의 물은 조금 깊습니다. 빨래를 넣었다 뺏다 할 때 흙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의 깊이지만, 송아가 들어가면 옷이 젖을 정도니 엄마는 빨래터 주면에 오지 못하게 합니다. 송아는 그런 이유를 알고 엄마보다 조금 더 올라간 곳으로 갑니다. 송아가 늘 앉는 돌이 있는 개울입니다.
엄마가 빨래하는 동안 송아의 아지트로 향해 작은 돌을 살짝 들어 올립니다. 송사리가 빠르게 도망가고 바닥 흙이 살짝 움직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송아의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는 바로 가재입니다. 가재는 도망가지 않고 웅크리고 있지만 송아의 손에 개울물 밖으로 나오고 맙니다. 송아는 가재와 인사합니다.
"가재야! 밤새 잘 있었어? 다른 곳에 안 가고 여기 그대로 있었네? ㅎㅎ"
송아는 엄마가 빨래하시는 날엔 이 가재를 만나기 위해 개울을 방문합니다. 가재와 인사를 한 송아는 가재를 다시 개울물에 놓아줍니다. 가재는 뒷걸음질 치며 내일도 송아와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개울물 속으로 쏙 숨어들어갑니다.
개울물을 따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신작로가 나옵니다. 송아 아빠가 퇴근하시면 신작로 버스 정류장에 내리십니다. 오후 늦은 시간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송아는 사촌오빠와 개울가 큰 돌멩이에 앉아 아빠를 기다립니다. 사촌 오빠와 강아지풀로 서로 간지럽히기도 하면서 아빠를 기다립니다. 송아와 사촌오빠는 퇴근하는 아빠의 손에 집중합니다. 막대사탕을 사오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막대사탕을 사주지 않기에 아빠만 기다립니다. 회사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섭니다. 아빠가 내리십니다. 멀리서 보는 아빠에게 "아빠" 부르며 손을 쳐다봅니다. 송아는 일어서서 "아빠!, 아빠!" 하면서 손을 흔듭니다. 아빠도 손을 흔드십니다. 송아의 기억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아빠를 만나면 아빠는 송아를 번쩍 안아주십니다. 낮에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물어보면 송아는 쫑알쫑알 낮에 했던 모든 행동들을 알려줍니다. 아빠 손을 잡고 집까지 오는 골목길 주변은 담에 호박 넝쿨이 올라가고, 밥 짓는 냄새도 나고, 담 아래 이름 없는 풀들이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 집에 들어오면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고, 한 옆엔 장독대가 있고, 한 옆엔 송아의 그네도 있습니다. 바로 과수원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가마솥 밥을 짓는 부엌엔 저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금방 지은 밥, 국, 여러 가지 반찬으로 한 상 들어오면 아빠, 엄마, 송아는 밥을 먹습니다. 아빠는 송아가 먹을 만한 반찬을 밥에 얹어 줍니다. 엄마는 버릇 나빠진다고 하지 말랐지만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엄마를 이기고 아빠가 주는 반찬은 정말 맛있습니다. 송아가 그리워하는 맛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엔 아빠가 모깃불을 피우십니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 아빠가 더위를 피하시면 송아는 그 주변을 뱅뱅 돌며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엄마가 주는 시원한 과일을 먹기도 합니다. 우물에 넣어 두었던 수박을 주시는데 우물 속에 있던 수박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아빠와 씨 뱉기를 합니다. 아마 그 마당에 수박씨가 싹을 틔웠으면 엄청난 수박이 열렸겠죠?
해가 긴 여름은 송아역시 하루가 깁니다. 모기가 많은 여름이니 모깃불 피운 주변에서 놀아야 모기를 피할 수 있습니다. 모기는 피하겠지만 콜롤콜롤 연기에 한두 번 기침도 합니다. 평상에 누운 아빠 팔을 베고 하늘을 봅니다. 별이 하나 둘 보이는 하늘을 보며 낮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놀았는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잠이 든 송아는 모기장이 잘 쳐진 방의 이불에 뉘어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는 회사에 가고 안 계십니다. 송아는 아빠가 오실 시간까지 어제와 같은 리듬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오늘도 아빠가 막대사탕을 사 오실지 개울가에서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립니다.
아빠와의 만남, 가재와의 만남, 송사리와의 만남이 있는 송아에겐 너무도 소중한 만남이 있는 장소입니다. 개울이 개울의 역할을 하듯 송아는 개울을 친구 삼아 늘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렇게 자란 송아는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으며 송아가 마음속에 간직한 개울은 지금은 자취를 감춰 매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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