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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by bellota

파란색 철대문에 우체통이 자그마하게 달려있고, 대문기둥 한켠엔 문패가 붙어있는 파란 기와 지붕 집.

"여기는 OOO의 집이요"

지금은 개인집에서 사라진 문화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대문에 문패를 걸어두었다. 문패를 갖는 것은 내 집이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한 큰 자랑거리였다. 문패는 아주 소중한 물건의 일종으로 우체부도 그 문패를 보고 그 집이 누구집인지 알 정도로 문패는 그 당시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보물이었다.


대문 오른쪽엔 작은 쪽문 하나가 있다. 내부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밖에서 아래 작은 문을 열고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들이 쓰레기를 정리해 간다. 그 시절엔 재활용이라는 단어조차 모를 때였기에 무조건 모든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렸으니 여름엔 파리와 쥐가 극성을 부리기도 한다. 어느 집 쓰레기통 입구를 보면 파리 등 해충이 살지 못하도록 하얀 가루를 뿌려놓기도 한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팔뚝만한 쥐도 보인다.


대문을 열면 좌측엔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옆엔 수도가 있어 빨래, 설겆이, 세척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늘막이 있다. 여름에는 등목을 하기도 하고, 물장난을 하기도 했다. 물 아끼라는 엄마의 호통에 웃으면서도 물 장난을 하기도 했다.


'ㄴ'자의 집 마당 한가운데는 꽃, 나무 등을 심을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유달리 꽃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정성으로 채송화부터 목련, 이름모르는 꽃들, 가을이면 국화의 전당이 되곤 한다. 그 화단에 깨진 접시를 파 묻으며

"이건 나중에 나중에 보물이 될거야." 하며 동생과 묻었던 생각이 난다.

아빠는 독일가문비 나무 한 그루를 심어두시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에게 트리를 꾸밀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하셨다. 너무 오래전 일이지만 머리속에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맨 오른쪽 방은 작은 부엌이 딸린 큰 방이다. 남에게 세를 주었다. 부엌이래봐야 연탄 넣을 아궁이 한개 있고 개수대 하나 있을 정도다. 그나마 수도가 나온다는 장점이 있던 것이다. 그 곳에 사는 부부는 그 부엌에서 세수, 샤워, 음식 등을 모두 해결하였다. 지금 이런 집의 구조나 생태가 이해가 될까? 그 당시는 신혼들이 그렇게 살림을 시작했다.


마루를 중심으로 방3개, 화장실1, 부엌이 있다. 부엌은 지하실과 연결되어 있고, 개수대는 있지만 바닥에 빨간 다라이 2개가 놓여있고, 수도꼭지에 호수로 밑까지 연결하여 설겆이를 한다. 개수대는 세멘으로 만들고 하늘색 타일을 붙여 여기가 개수대임을 알리지만 세멘으로 만든 개수대는 엄마가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릇이 깨질 염려가 많아 그렇다고 했다. 그럴듯한 이유다. 설겆이는 바닥에서 늘 쭈그리고 앉아 했다. 겨울 찬물에 설겆이를 하면 손이 빨개 지지만 부뚜막에서 호호 불며 녹이기도 했다.


연탄을 구들에 넣어 방이 따뜻해지는 방식이었다. 부뚜막은 늘 따뜻하다. 반대편에는 곤로가 있다. '곤로'는 기름에 심지를 담그면 심지가 기름을 먹는다. 그 위에 불을 붙이면 열기가 꽤 쎄다.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에 곤로는 빨리 끓는 아주 신통한 녀석이다. 비싼 기름을 사용하기에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아껴서 사용한다.


시골 부엌.jpg



친할머니께서 몇 년에 한 번 오신다. 나는 친할머니를 엄청 좋아했으나,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를 좋아할 리 없었다. 늘 불평불만인 것이 생각난다. 왜 그랬을까? 친할머니가 오시면 엄마는 우리를 할머니께 맡기고 지방에 계신 아빠에게 가신다. 우리는 할머니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 엄마가 늘 아빠에게 가기를 바란다.


할머니가 오시면 맛있는 것도 해 주시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할머니가 참 좋다. 할머니와 먹는 밥도 맛있고, 할머니와 빨래도 하고, 할머니와 시장도 가면서 할머니 치맛자락 붙들고 쫄쫄 따라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밤이 길어서인지 배가 고파온다. 이때 할머니는 계란을 삶아주신다. 바로 그 곤로를 사용한다. 작은 냄비에 우리 형제 갯수 만큼의 계란이 익어간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계란이 끓는 물에서 움직이는 소리

우리는 합창을 한다.

'달그락, 달그락, 빨리 익어라 달그락'


이렇게 해서 밤에 먹는 계란은 어찌나 맛있는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물 넣고 삶은 달걀인데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달그락 계란은 그 때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그 후 할머니가 오시면 우리는 신호를 보낸다

'달그락?'

이 신호에 따라 달걀을 삶는다.


지금은 그 집도 없고, 곤로도 없고, 할머니도 안계신다.

가끔 찾는 할머니 묘소를 갈 때면 삶은 달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할머니! 달그락 생각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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