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가족관계일지라도
어머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일제강점기시대와 한국전쟁,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의 ‘가난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차별과 시련을 온몸으로 견뎌내신 분이다.
친정아버지가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와 “네 어머님 되실 분이 머리가 아주 좋으신 분 같다.”라고 말씀하셨을 만큼, 어머님은 판단력과 결단력이 매우 뛰어나셨다. 남편의 작은 누나(작은 형님)는 그 당시엔 2년제였던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교사를 오랫동안 하신 후 퇴직하셨다.
원주여고를 졸업한 작은 형님에게 아버님은 ”버스안내양을 하라 “하셨고 어머니는 “ 여자도 공부를 해야 혼자 살게 되더라도 떳떳이 살 수 있다.”는 말로 아버님과 맞서며 대학공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형님이 서울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한다. 형님은 2년제였던 서울교대로 편입학했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낸 후 전교조활동을 했던 이유로 조기은퇴를 하셨다.
남편 바로 위에 아주버님은 꿈이 영화배우였을 만큼 남자형제들 중에 가장 잘생기셨다. 성격이 형제들 중에 유난히 예민했던 형님은 정규학교 과정대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의 고신대 의대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에 고등학교 교사였던 형수님을 만나 결혼을 했다. 전해 들은 바로는 형수님이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던 다방에 아주버님도 친구를 만나러 들렀는데 형수님이 먼저 다가가 사귀자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같았던 잘생긴 아주버님의 모습에 반해서!
의대공부를 포기한 아주버님은 온 가족들의 걱정에 보란 듯이 남편바라기 형수님과 단 둘이 연애하듯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다.
작은 누나인 형님 하고만 몇 년에 한 번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고 다른 형제들은 아주버님의 소식을 작은 형님한테 전해 듣는다.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변화될 가족관계의 모습이고 남편과 형제들은 이미 모두 쿨하게(?) 가족이기주의의 틀에서 빗겨 난 모습인데 나만 아직 적응이 안 되고 있다. 모쪼록 다섯째 아주버님과 형수님이 건강히 잘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나는 ‘소시민적 가족이기주의’ 소리를 듣는다 해도 같은 하늘아래 사는 내 형제들을 몇 년씩 못 보고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