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화를 했다. 무슨 일 있냐고.
하루 이틀 걸러 올라오던 브런치 글도 통 안 보이고 전화도 자주 꺼져있고 카톡 답장도 없어 걱정했다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의 말도 건넸다. “원주로 갔으니 시댁식구들도 신경 쓰이고 명절도 다가오니 할 일도 많겠다.”
그동안 내 사정을 제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복음말씀 전하듯 말했다. “ 여태껏 시댁식구들이 부담스럽다고 느낀 적 없어. 일도 못하면서 거든다고 하다가 사고만 쳤던 내가 오히려 부담스러우셨겠지! 이젠 추석 성묘 때만 형제들, 조카와 며느리, 손주들이 다 함께 묘소에서 모였다가 밥도 식당에서 먹고 헤어져! 설 명절엔 각자의 식구들끼리 따로 지내기로 했고. 에구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다. 내가 요즘 p 씨와 사랑에 빠져서 밥때도 건너뛰고 방에서 나가질 못하고 있다.”
친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하냐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뭐라고? P 씨가 누구야? 네 신랑은 Lee 씨잖아?”
내 주변엔 제 남편을 아직도 “신랑”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몇 명 있다. 60을 넘긴 나이에도 남편이 신랑으로 보이는 게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다!
좀 더 놀려줄까 하다가 하도 진지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P 씨의 정체를 말해 주었다.
“요즘 전자피아노, 걔랑 노느라고 바빠.!”
은퇴하고 원주로 온 후에 남편은 한동안 마치 무슨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날마다 열심히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 나도 두어 달 은 잔 손 가는 소소한 이삿짐 정리와 버리기, 손님맞이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젠 동네 근처의 길을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고 시장가는 버스도 헛갈리지 않고 잘 탈 수 있게 되었다. 꼼꼼한 남편은 내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버스를 잘 못 탈까 봐 버스 안내표(?)를 만들어 주었다.
몇 달 동안 남편은 사돈 형, 고등학교 동창들, 돌아가신 아주버님의 친구들까지 만나고 다녔다. 은퇴한 사람이 맞나? 할 생각이 들 만큼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혼자 공짜 영화도 자주 보러 다녔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갈 곳과 만날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도 처음 두세 달은 혼자 집에 있는 게 전혀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집안의 멍멍이들과 고양이들 챙기는 일 만으로도 바쁘고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차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