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프보이 Apr 03. 2023

나에게는 얼마나 남았을까

아프고 병든 할머니를 바라보며


여의도의 봄


오늘 할머니가 퇴원하셨다. 그렇지만 퇴원하고 집으로 오시는 건 아니고, 원래 계시던 요양원으로 돌아가신다. 아버지와 엄마, 나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나도 할머니를 5년 만에 뵈니까, 한국 왔을 때 보고 가야 하니까.


요양원에 도착해서는 간호사께서 비닐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처음으로 들어간 요양원에선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제일 먼저 반긴다. 


쾌쾌하고 눅눅한 냄새, 티비가 켜져 있고, 식사하고 계신 할머니들, 누워계신 할머니들. 하나 같이 안색이 좋지 못하다. 그래도 나는 우리 할머니도 어디 선가 건강하게 식사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 할머니네!". 그러자 할머니가 우릴 쳐다본다. 할머니네 하고 외쳤지만, 가까스로 알아봤다. 예전에 그 풍채 좋던 우리 할머니는 어디 가고, 이제는 겨우겨우 병상에 누워 힘겹게 우리를 쳐다 볼뿐이다. 


 나도 엄마도 반갑게 인사한다. "할머니 안녕!". 할머니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 마냥 제대로 쳐다도 안 본다. 인사도 안 해주는 우리 할머니, 참 짓궂어. 


할머니가 치매 가지고 계신지는 벌써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엔 모두가 당황했지만, 언제부턴가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 할머니에게 적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이게 딸이고 손자인지 몰라도, 눈치껏 아는 척이라도 해주셨는데, 이제 할머니는 누워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할머니 주위 분들은 다 힘겹게 누워 계셨다. 옆에서 극진하게 살펴주시는 간호사 분들. 아파하는 사람들을 재우려 라디오에서 찬양을 들려주시는 간호사 분. 


찬양이 흐른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내가 나 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눈앞이 나도 모르게 너무 먹먹해져서 할머니도 엄마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뒤돌아서 창밖을 보며 휴지를 찾았다.




우리 할머니는 성내동에서 대장부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 데리고 바깥에만 나가면 주위 사람들이 어디 집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하고 다들 여쭤보곤 했지.


쌀집도 크게 하셔서 집안 다 일으키고, 아들들 대학 보내고, 딸들 키우고, 말썽만 키우는 할아버지 단속 하고. 키도 훤칠하시고 장사 수완도 좋으셨는지, 지금으로 따지면 공장 매니저들 우리 집 쌀 사라고 뒷돈 주고 그랬다고 한다. 


매일 같이 손주들 손녀들한테 본인 자식들 모르게 오천 원 만원씩 주머니에 넣어 주던 우리 할머니. 그런 할머니는 어디 가고 이제 여기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몰골은 말라가지고. 그래서 그런 할머니를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느낀 냄새는 확실히 내가 아는 삶의 냄새는 아니었다. 그건 뭔가 이 세상보다는 저 세상에 가까운 냄새였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여기는 이승인데 뭔가 이승이 아닌 냄새가 나니까. 그리고 그곳에 우리 할머니가 있으니까. 그 사실이 조금 힘들었나보다.


누군가 그랬다. 지금 우리의 인생을 배터리로 비유하자고. 100살을 100으로 놓았을 때 지금 난 70정도가 남았을 것 이다. 그리고 이 배터리는 리튬 배터리와 달리 충전이 불가능 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고 강하게 믿는 성격 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다고 자각한 지금, 삶이 무엇일까 참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반) 외국인이 보는 서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