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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by 이희숙

공주에 산다는 것은 때론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사는 일이다.

백제의 고도, 왕들의 숨결이 머물렀던 이 도시에는 제민천이 조용히 흐르고, 시냇물가를 산책하는 노부부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스며든다.

커피숍 창문 밖 풍경을 보니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노인의 뒷모습과 가족단위로 여행을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예전엔 교육도시로 불렀지만, 지금의 공주는 조금 다르다.

세종시 개발 이후 지속된 인구 유출로 인해 도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과 노년층 인구가 많아진 점은 많은 지방도시들이 겪고 있는 변화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제민천 주변에 카페들이 모여 있고 하숙 마을과 게스트 하우스가 있으며 이곳저곳에 수줍게 자리 잡은 많은 볼거리들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이동 등 많은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들도 많이 있다.

주말이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옛것과 어우러져 감성 가득한 골목을 찾는 연인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찾아 조용한 골목의 카페들을 찾아든다.

나 역시 그중 하나, 공주라는 도시에 뿌리내린 작은 커피숍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커피숍을 운영하며 브런치스토리에 일상의 단상과 이야기를 남긴다. 오래된 도시 속의 고즈넉함, 일상의 향기, 공주는 그렇게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되어간다.


학창 시절 소풍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그리움 가득한 추억이다. 소풍 하면 떠 오르는 것이 곧 김밥이다.

엄마가 아침 일찍 준비해 준 김밥 몇 줄과 음료수를 가방에 넣고 친구와 함께 했던 그 길이 지금에 가도 늘 새롭다.

공주의 명소인 공산성은 유치원으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봄가을로 찾게 되는 소풍의 단골 장소였다.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을 준비한 장기자랑도 하고 달리기도 하였다. 나무틈과 돌아래에 숨겨놓은 보물 찾기는 소풍의 하이라이트였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곳을 지금도 찾는다. 그곳에 가면 수십 년의 시간과 추억들이 한 공간에 머물러 있어 시간을 거스른다.

백제라는 고대왕국을 다스리던 한 왕이 깊은 상념과 고뇌 가득한 맘으로 걸었던 이길, 철없는 궁녀들의 재잘거림이 묻어나는 이 길을 걷자니 1500년의 시간이 한 곳에 머문 듯하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짙어갈 무렵 찾았던 공산성 단풍의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서로를 간지럽히며 내는 작은 소리와 햇빛에 반짝이는 영롱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1500년 전에도 그랬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시간이 흐르며 도시의 정서도 개인의 감정도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지켜보며 자신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동네 이곳저곳이 TV 드라마에 나오기도 하고, 교과서 속에서만 배웠던 석장리의 구석기시대 문화축제가 열린다. 이런 행사가 개최되면 커피숍 앞엔 풍선 가득한 작은 트럭이 아이들을 유혹하고, 엄마 아빠를 졸라 기어이 예쁜 풍선을 사고야만 아이들이 하늘로 날아갈 듯 거리를 산책한다.

TV속 익숙한 우리 동네가 배경으로 나올 때의 그 묘한 반가움, 그리고 현실에서 축제로 북적이는 거리의 분위기가 겹쳐지면 마치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주, 역사의 숨결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주, 그래서 공주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멈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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