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뜨거운 햇살과는 다르게 해가 지면서 상쾌한 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스치며 다가오는 비람이 다소 차갑게 느껴지며 긴장감이 일렁이기도 한다.
제민천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들이 정답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있고 운동경로와 시간대가 비슷하여 자주 만나는 사람도 있다.
손녀딸들과 커피숍의 작은 뜨락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여기저기 공간들 사이로 숨으려고 하다 보면 숨을 곳이 너무 작고 좁아 나의 몸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여섯 살 된 손녀딸과 세 살 된 손녀딸이 이젠 제법 의사소통이 되어 같이 노는 것이 재미있기만 하다. '날 잡아 봐라'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자연스레 제민천가로 이동하여 산책을 하게 된다.
여섯 살 된 큰 손녀딸과 걷다 보면 이런저런 할 이야기가 많다.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물가에 노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젠 제법 자란 냇가의 수풀 주위엔 "뱀, 벌 조심"이라고 쓰여 있다. 손녀딸은 나에게 그곳을 가리키며 'Watch out for snake and bee'라고 말한다.
큰 손녀딸은 영어로 주제에 관하여 설명을 하며 맞추어 보라고 한다.
Could you tell me about my younger sister?
나는 she is three years old.
She wants to play with me.
She likes to get ride a kick board. 이렇게 말한다
어떤 날에는 동물을 묘사하는 몇 가지 특징을 말하며 맞추어 보라고 한다. 손녀딸과 난 이렇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걷는다. 걷다 보면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이 손녀딸이 키가 커서 일곱 살이냐고 물어보면 손녀딸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산책은 생각의 근육을 깨우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고요한 발걸음 안에서 사고가 흘러나오고 들리는 새소리 나 나뭇잎의 흔들림이 어느새 하나의 문장, 하나의 감정 혹은 하나의 깨달음으로 바뀐다. 산책이야 말로 유일하게 나 자신과 자연과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강아지는 산책을 할 때 신이 나서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건다. 매번 처음인 것처럼 신나게 걸어가는 그것이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잊기 쉽지만 매일 걷는 길도 처음 걷는 오늘의 길일 수 있디.
마치 조용한 오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길을 당신과 함께 걷는 기분이 든다. 목적이 없어도 좋고 오히려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산책은 가장 사적인 동시에 가장 열린 시간이디.
누구와 함께 걷든, 혼자 걷든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조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늘상 대하던 길인데도 오늘은 새삼스럽게 예뻐 보이기도 하고 문득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이 스며 나오기도 한다.
마음이 가는 데로 걷는 그 시간은 생각을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리는 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들 파아란 하늘, 햇살에 반사되어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들의 속삭임 , 사람들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산책길에서 다시 보여진다.
인생도 경주하는 것이 아닌 산책하듯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아닌 함께 걸어가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