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온기

by 이희숙

발행된 글을 읽은 군가" 동네에 그런 행사가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평소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의 행사에서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프로그램 순서지도 보게 되고, 동네의 활기찬 에너지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엔 행사나 축제가 끝나고 나면 웰 스미스 주연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배경이 되는 도시처럼 고요고 적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달랐다.

행사가 끝난 다음 날 비가 촉촉이 내음에도 커피숍 안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창가 주변으로 옹기종기 자리를 잡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조금은 어수선한 감이 있다.

제민천 주변에서 행사가 진행되거나 새로운 메뉴에 대한 홍보가 있으면 커피숍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온종일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인생여정의 항해 중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

나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오랜 기간 커피숍을 운영해 오면서 만났던 사람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만남도 같은 상황에서 연속적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들이 다이내믹하게 느껴지며 이젠 체질화되어 나의 성격의 일부로 삐르고 신속하게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을은 어느덧 소리 없이 다가와 창문을 열어 놓으니 스산한 바람이 일렁인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밖의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어 너무 좋다.

커피숍 휴무일에 영어 공부를 하러 주변의 카페에 갔었다.

평소에 여러 번 같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해 왔던 곳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빨간 벽돌의 벽면이 전에 운영했던 커피숍의 벽면과 똑같다. 그 말을 꺼내자마자 원어민 선생님은 "cozy"라는 단어를 말하며 질문을 유도한다. 우린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느끼는 표현을 떠올리며 스스럼없이 말한다.

작고 아담한 모퉁이, 따듯한 느낌의 연한 오렌지빛 조명 그리고 붉은색 벽돌의 벽면

커피숍에 머무는 동안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편안함이 마음에 느껴진다.


손녀딸들이 보고 싶어 가끔 만나 그들과 함께 공원을 걷기도 한다.

두 아이들이 날쌔게 자전거로 거리를 쌩쌩 달린다.

그런 둘째 손녀의 모습이 너무 예뻐 키를 낮추고 몸을 돌려 마주 보며 거리를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빠게 걷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다 커브길에서 넘어졌을 때 살짝 들어 안아 주며 "괜찮아" 하면 나오던 눈물을 뚝 그치며 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영락없이 머니를 따라오겠다고 한다.

딸이 "그럼 엄마는 어떻게 하지"라고 물으면 둘째 손녀는 "엄만 엄마집에 그냥 있고"

어느 순간 볼 때마다 말을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아이들은 점점 자고 나도 나이 들어감이 느껴진다.

큰 손녀는 여섯 살인데도 꽤 의젓하고 어른스럽다. 둘째 손녀는 언니와 항상 같이 놀고 생활하면서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며 하나하나씩 배운다.

아직 여리디 여린 연약한 같은 아기인데도 둘째 손녀는 묻는 말에 척척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말한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똑똑똑" 노크를 하라고 가르치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에 둘째 손녀는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재키고 "아무도 없으니까 들어와도 괜찮아"라고 대답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작은 아기에서 점점 자라는 모습이 이제는 큰 아이들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아이들과 부딪치며 혼연일체가 되어 그 안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잎이 이슬을 머금어 햇빛에 찬란하게 반짝이듯 피어나는 사랑의 열매들이 더욱 튼실하게 결실을 맺어간다.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작은 골목의 한옥의 집들이 눈에 띈다.

오래된 자그마한 쓰레트 지붕에 새롭게 인트로 단장한 대문이 옛 향수와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좁은 오솔길 갈라진 틈 사이, 담장 넝쿨이 반겨 주는 곳곳의 풍경들이 와 함께 뛰노는 손녀들의 모습과도 흡사하게 느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억의 옥수수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