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추석명절에 냉장고가 고장이 난 적이 있다.
냉동고 안에 넣어 두었던 물건이 녹아내렸고, 뒤엉긴 체로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오랜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조리재료들이 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여간 심란하지 않았다.
그참에 냉장고를 정리하고자 모든 물건을 죄다 끄집어내어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골라 치우는데만 몇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 냉장고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무작정 냉장고 안에 여러 가지 것들로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반찬이나 음식들을 바로바로 비우게 되었다.
냉장고는 창고가 아니다!!
몇 번의 이사 경험이 있다.
이삿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평소에 생활할 때에는 잘 몰랐었다. 그러나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할 때 어딘가에 여기저기서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짐을 싸는 것도 어려운데 짐을 풀고 정리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한 때 옷장 속의 옷들이 너무나 많은 짐처럼 느껴졌었다. 철 지난 옷과 나의 안중에서 사라진 옷들을 큰 자루로 한 푸대를 버렸다.
남편의 여름 체크남방과 유행에 뒤진 양복 등을 정리를 해가며 몽땅 다 버렸다. 남편이 외출를 하려고 남방을 찾는데 입고 갈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싹 버리고 나면 기분이 좋다. 물론 이런 문제점이 하나씩 생기기도 한다.
일을 마친 후 멍하니 TV속 브라운관으로 쏙 빠져들어 갈 때가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의 할머니집을 치우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해 물건 하나하나를 보며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 나 눈물을 삼킨다.
막상 정리하려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 고민을 하던 중에 스텝 동료들이 하나씩 나타나 도와주며 중간중간 에피소드로 웃음짓게 한다.
할머니 집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보며 한숨짓던 모습을 시작으로 동료 친구들이 합류해서 그 많던 풀과 잡초들을 땀을 뻘뻘 흘리며 제거하고, 물건들을 하나 하나씩 치워 나간다.
더위와 맞서 잡초를 제거하던 중에 땀 범벅이 되어 등목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펌프질을 해서 물을 품어내어 등목을 하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 붉은 밤색의 다라에 물을 퍼서 물장구를 치며 뛰어놀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려운 일들을 서로 도와 문제 해결을 해 나가며 마치 어릴 적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언젠가 큰 손녀는 블록을 하나하나씩 세워 큰 요새처럼 성을 쌓는다. 그것을 본 둘째 손녀가 발로 뚝 치고 지나간다. 그러자 공들여 쌓은 블록들이 우르르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딸은 친구가 잘한 것을 보면 손뼉을 쳐 주고 "잘했다"라고 칭찬을 해 주는 거라고 말한다.
어느 날 카카오톡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 와 있다.
큰 손녀는 바이올린을 켜고 작은 손녀는 언니가 연주하는 악보를 들고 서 있다. 박수 칠 타이밍을 찾기 위해 움칠움칠하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한없이 사랑스렂게 느껴진다.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작은 손녀는 악보를 든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짝짝짝" 친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긴장이 풀어지는 이러한 광경은 나를 있는그대로의 모습으로 무장해제시킨다.
커피숍을 한다는 것은 무한한 경쟁력을 요구한다.
때론 우리네 삶이 경쟁의 세상속으로 던져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커피숍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쉴 나이인데 뭐 그리 치열하게 사느냐고'
누군가에게 글을 공유하고 싶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 '경쟁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참 난감했었다.
그런 질문에 '나의 경쟁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 스스로와의 경쟁이라서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있잖아, 내 말 좀 들어 봐"라고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따끈따끈한 음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글은 '언제 나오나요' 하며 누군가는 궁금해한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킬 것인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