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찌가 어제 미열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양호해서 푹 잘 자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나의 생일을 둘찌와 찐한 시간으로 보내기로 마음먹고 하루를 시작하였다.
첫찌와 셋찌를 등교시키고 둘찌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목이 많이 부어있어요. 콧물도 많은데, 아이가 잘 참고 있네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아픈 와중에도 잘 참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기특하게 여겨졌다.
약을 먹고 나니 힘이 나는지, 텃밭에 물도 주고, 부루마블도 하자고 해서 같이 놀았다.
중간에 박스가 배달되었는데 생일이라고지인이 보내준 찻잔선물에, 그것을 보며 잠시 나의 생일을 음미하였다.
생일선물로 찻잔은 처음 받아본다.
둘찌에게 만화를 틀어주고 집안일을 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둘찌와 점심을 먹고, 날도 좋으니 청소기를 돌리고 오붓하게 루미큐브를 하였다.
졸려하는 둘찌를 재우며, 이렇게 둘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자 하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후를 맞이하였다.
둘찌가 자는 동안 버스를 타고 하교하는 셋찌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런데 셋찌가 버스에 없다. 1호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없다. 혹시나 2호차에 연락해 봤는데, 없단다.
급히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더니, 학교에 있단다.
맙소사. 왜? 어째서?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다음 버스를 타고 오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비어서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할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어지러워 학원 못 갈 것 같아. 데리러 와줘."
"셋찌 데리러 가야 하는데, 그냥 학원 가면 안돼?"
"진짜 너무 어지러워, 학원 못 가겠어."
아오, 분명 집에 가면 금방 살아날 텐데, 또 혹시 동생처럼 열나고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첫찌가 있는 학원 근처로 먼저 가서 픽업 후 집에 내려주고 셋찌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그 후로 두 시간가량의 시간 동안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나의 멘탈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미역국을 끓였다. 갑자기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내가 끓여준 들깨미역국만 먹어서 우리 가족생일에 미역국은 모두 내가 끓인다. 아침에 아내가 고민하다 미역국 대신 콩나물국을 끓여주겠다 해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잠시 방에 들어와 누워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둘찌가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셋찌가 학교에서 버스를 안 탄 건 실수다.
첫찌가 어지러운 건 물을 안 마셔서 그런 거다. 그렇게 물도 안 마시고 갈증 나도록 뛰어놀지 말라했거늘.. 어지럼을 느낀 건 말을 안 들은 첫찌의 불찰이다. 그걸 또 엄청 화낼 일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첫찌의멀쩡한 모습을 보니 더 열받는다.
이성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분노가 올라왔다.
생일이라 더 그런가? 이러다가 애들 잡을 것 같아서 방에 혼자 있었다.
다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저녁은 먹여야 되니, 방을 나왔다.
첫찌가 내 생일 선물을 산다며 나갔다 온단다.
둘찌, 셋찌도 같이 간다며 오빠 따라나섰다.(둘찌, 셋찌는 용돈이 없어서 내가 돈을 주었다.)
그렇게 삼 남매는 내 생일 선물을 사 왔다.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봐 뛰어왔단다.
선물을 보니, 나의 분노가 사라짐을 느꼈다.내가 이렇게 쉬운 남자였다니... 나 스스로에게 어이없기도 했다.
아내가 퇴근하며 케이크를 사 오고, 같이 저녁 먹었다. 케이크에 초를 켜자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초를 끄려는데 아무도 달려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내가 초를 꺼본 것 같다. 이제 생일의 주인공이 초를 끄는 거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아는 건가? 잠시 그 순간이 신기했다.
오늘 아침 시작부터 무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나 정신없고 산만하며 환장할 노릇의 생일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