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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빠 Apr 05. 2024

두 번 수업한 요가강사

인생은 알 수 없다.

살기위해 시작한 운동이 나의 업으로 마주한 순간이왔다.


국선요가(국선도와 요가)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멀쩡한 관절을 찾는 것이 더 쉬울정도로 내 몸은 만신창이였다.


사부님의 3개월만 버텨보라는 말에 속아

요가와 국선도에 입문하게 되었다.


3개월쯤 지났다.

여전히 운동은 힘들고 고되지만, 몸의 통증들이 조금씩 약화되어 감을 느꼈다.  


사부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3년은 해야 몸에 변화를 느끼게 된다고 말하셨다. 속아 넘어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살고자 열심히 달렸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요가강사가 되어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때다.

요가지도자 3급을 도전해보면 지금보다 더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당시 집안에 여러 일들로 인해 수업을 많이 나가지못해 운동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큰 마음을 먹고 아내에게 허락을 구했다. 비싼 수강료에도 아내는 선뜻 허락해 주었다.


'너무 쉽게 허락해 주는 것 아닌가?'

잠시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감사함으로 요가지도자 3급 과정을 마쳤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난 여보가 요가강사로 나갈 거라고 생각 안 했어, 다만 더 배우면 자기한테 좋으니깐 하라고 한 거지."


그냥 나를 위해서 허락해 준 것이다.

맙소사!! 이렇게 천사 같은 아내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요가지도자 3급을 마치면 내 몸은 유연해져서 다리 찢기도 멋있게 하고, 물구나무도 멋지게 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내 몸이 구사하는 걸 보니 살짝 아쉽다. 물구나무를 설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말 곧게 펴지지는 않는다.


얼떨결에 2급 과정까지 시작했다.

어느 날 수업을 듣는 중에 선배 강사님으로부터 노인복지관 추가 모집 공고가 났으니 지원해 보라했다.

사부님도 어르신들은 엄청 유연한 동작이 필요 없으니, 경험 삼아 원서를 넣어보라고 하셨다.

긴장이 되었지만 사부님과 선배강사님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지원하게 되었다.


서류를 합격하고 면접을 봤다.

내 옆에서 같이 면접을 보던 분은 20년 경력이었다.

'맙소사 망했구나'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좋은 경험 했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답변하고 나왔다.


며칠 후 합격공고가 문자로 날아왔다.

맙소사. 국선요가의 사부님과 선배님들께 말씀드렸더니, 많이 축하해 주셨다. 여러 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사부님의 특훈도 같이 시작되었다.


나 하나 수업 나가는 게 뭐라고 수업지도부터 세세하게 가르쳐주시는데 고마움을 넘어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수업날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높아져 갔다.

긴장이 극에 달 했을 때 선배님들에게 외쳤다.


"강사모집공고 지원하지 말걸 그랬어요!"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선배님들이 격려해 주셨다.

와 이런 든든한 사부님 선배와 동기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첫 수업날이 왔다.

강의 직전까지 매우 떨렸지만, 사부님께 3년 동안 줄기차게 배운 것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나오는 것을 체험했다.  말에 많은 분들이 웃고,  내 동작을 따라 해주는 것이 즐거웠다.


수업이 끝나고 몇 분이 이런 말을 해 주셨다.

"선생님 시원했어요."

고작 한 번 수업을 했을 뿐인데 이런 말을 듣다니 좋았다.


그렇게 두 번의 수업을 끝냈다.

두 번째 수업은 첫 번째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이 떨렸다.

사부님 말씀에 앞으로 채찍도 많이 맞을 것이라 하셨다. 그래도 첫 열매는 달게 느껴졌다.


후유증으로  허리통증과 목이 아프다. 피로감도 크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딛는 나의 첫걸음이 소중하다.


월급쟁이 사무직 8년차 과장달자마자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터지며 약먹고 잠만자고 방문을 나서지 못하던 시절 때 나는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다. 여러 가지 관절의 통증으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서  다시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 여긴 때도 있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 그리고 기도해주셨다.

인생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시 걸음마를 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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