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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Jul 21. 2023

[서평] 봉준호 감독이 이걸 영화로 만든다고?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 <미키17>로 결정된 이후 원작 소설인 <미키7>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 SF를 선택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해서 소설을 읽어봤다. 

 결과적으로는.. 응? 이걸 봉준호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라는 의문이 남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풀어놓겠다.           


'미키7' 책 표지

 소설의 배경은 대략 이러하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 지구 이외의 행성들을 개척하는 시대. 기계는 하지 못하는 세밀하면서도 위험한 업무를 맡기기 위해 익스펜더블이란 것을 만들어낸다. 이는 쉽게 말하면 복제 인간이다. 자신의 의식을 업로드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육체는 똑같이 구현해내서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다 죽고 나면 그 사람의 이름에 숫자를 붙여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낸다. 즉, 소설의 제목인 미키7은 미키란 이름의 익스펜더블이 7번째로 만들어진 형태를 말한다. 봉준호 감독이 17이라는 숫자를 단 것은 17번째 미키라는 뜻. 그보다 앞서 16명이나 미키가 죽은 상황을 설정했다는 의미다.      


 미키가 활동하는 곳은 얼음으로 뒤덮인 니플하임이라는 행성이다. 그곳에는 크리퍼라는 위험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데, 동굴에 갇히 미키7이 크리퍼에게 죽음을 당할 위기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사실상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동료들은 후퇴한다. 그리고 기지로 돌아가 보고를 하고 미키8을 만들어내는데, 문제는 미키7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은 기지 안에 미키7과 8이 동거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정된 자원으로 척박하게 살아가는 개척지에서 두 명의 익스펜더블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한 명은 폐기될 것이 분명했다. 7과 8은 서로 누가 죽을지를 결정해보려 하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함께 지내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이 소설의 5분의 4는 바로 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좁은 개척지 기지 안에서 7과 8이 번갈아 일을 나가고, 1인분 배급 식량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고, 애인과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내용. 

 SF의 매력은 미래에 정말로 구현될 것 같은 과학기술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과 설정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 익스펜더블이란 존재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7과 8의 동거 상황에서는 ‘나’와 ‘또 다른 나’가 공존할 수 없을 때 누가 죽어야 하는데, 누가 음식을 더 먹어야 하고, 누가 애인과 데이트를 할 것인가 등 여러 딜레마를 풀어놓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익스펜더블이란 설정에서 인간 존재론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얘기해보자. 그게 과연 새로운 질문인가? 혹은 앞서 언급한 딜레마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는가? 이는 이미 SF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 심지어 영화나 소설을 벗어나 많은 분야에서 숱하게 다뤄진 질문들이다. 거기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파생해낸 것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에드워드 애슈턴은 미국식 유머로 무장된 사람 같은데, 캐릭터부터 소설의 톤까지 미국식 유머의 기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철학적 논의에는 흥미가 없는지 독자가 품을 수 있는 의문에 대해 어떠한 답이나 진전된 내용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런 질문들을 뽑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유머를 통한 재미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유머가 담긴 문장은 찰나의 웃음 밖에 선사하지 못한다. 이 소설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미키7과 미키8이 공존하게 된 상황에서 스릴을 만들어내거나, 미키7이 죽어선 안 되는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소설에는 그게 없다. 심지어 이 둘의 공존이 들켜서는 안 된다는 긴장도 없다. 7이 죽으면 8이 대신하면 되는 거고, 8도 죽으면 9가 만들어지면 되기 때문이다. 미키7이 알고 있는 정보가 개척민의 생존에 중요한 내용처럼 다뤄지지도 않아 독자는 미키7의 생존을 초조하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건 작가의 나태하고 빈곤한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그걸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개척지라는 공간의 설정이다. 현실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개척지는 갈 곳이 별로 없는 아주 좁은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7과 8이 함께 방에 있을 수 없을 때 몸을 피할 곳이 없다. (결국 갈 곳 없는 7은 체력단련실에 숨는데, 그 과정에서 고백한다. 개척지 기지엔 갈 곳이 없다고.) 그런 공간적인 제약은 정체를 숨겨야 하는 서스펜스에 부적합하다. 작가는 공간을 확장하던가, 7과 8이 공존을 숨길 수 있는 설정을 만들었어야 한다.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두 사람이 만나는 인물들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정보 차이, 그로 인한 의심이나 긴장감을 만들어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실패한다. 그래서 미키7과 8이 느긋한 미국 유머처럼 어기적어기적 자리를 바꿔가며 숨어있는 내용을 두꺼운 책 내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초반 내용으로 정리하고 넘어갔을 이야기이건만 이 소설은 아주 길게 풀어냈다. 그 말은 작가가 그 이상을 상상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짧게 결론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웃기지도 않고, 손에 땀을 쥐지도 않는다. 독자에게 미키7의 생존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만들어주지 못한다. 아마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소식 이전에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작품의 이름도, 작가의 이름도 생소했을 것이다. 꾸역꾸역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그랬었던 이유가 있구나.      


 봉준호 감독은 아마도 소설의 내용보다는 상황 설정에 흥미가 생겼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익스펜더블이라는 설정, 어쩌다 똑같은 내가 공존하게 된 상황. 영화로 가져갈 수 있는 포인트는 그 정도인 것 같다. (설마 이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하지는 않겠지.) 


 개인적으로는 그 외에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소설에서 익스펜더블의 시초처럼 짧게 언급되는 과거 이야기다. 유니언의 부자이자 권력자였던 이가 매니코바라는 익스펜더블의 시초를 개발해낸다. 그는 매니코바를 더 많이 생산하고 싶지만 한정된 자원을 가진 우주에서 그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단백질과 칼슘 등 매니코바의 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노리는데 바로 인간이다. 그는 유니언의 노숙자나 극빈자들을 납치해 실종 사건을 만들어내는데, 나는 이 내용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보다 흥미로웠다. (미안하다, 에드워드 애슈턴) 내가 만약 봉준호 감독이라면 이쪽에 미키의 이야기를 섞어 넣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만을 재료로 했을 때의 이야기고, 봉준호 감독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아예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한가? 그럼 영화가 개봉하길 기다리자. 그의 작품의 예고편이라도 보겠다는 심산으로 <미키7>을 읽어보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말리고 싶다. (출판사가 내 글을 무척이나 싫어하겠군)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거나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원작 만화 보지 않고도 충분히 즐겼듯이, 봉준호 감독의 <미키17>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7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도만 기억해두면 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17로 숫자를 키웠으니, 스케일이 커졌다는 뜻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의미를 담겠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미키17>의 개봉일은 2024년 3월 2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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