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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Aug 31. 2023

[전시] 낭만을 현실로 만든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

문도 멘도 판타스틱 시티 라이프 - 루이스 멘도

 근래에 일어났던 기술의 발전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AI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었다. 인간 고유의 창작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회화에서 단순히 인간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뿐 아니라, 입력한 키워드에 따라 화풍을 만들어 내고 두려움, 놀람, 외로움 같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웠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면서 가장 큰 위협을 받는 직종이 있다면 아마도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도 멘도 판타스틱 시티 라이프>는 루이스 멘도라는 일러스트레이터, 그것도 아이패드로 작업하는 작가의 작품을 모은 전시다. 문도(Mundo)는 스페인어로 ‘세계’를 뜻한다고 하는데, 일본에 있는 그의 좁은 작업실에서 작품들이 탄생했다고 하여 붙였다 한다. 흔히 예술가들에 대해 자유롭다는 이미지를 갖곤 하는데, 그중 대중이 낭만처럼 그리는 것은 타지를 떠돌며 자신의 창작 세계를 펼쳐나가는 예술가의 삶일 것이다. 어찌 보면 루이스 멘도는 그 낭만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아이패드 하나를 들고 도시를 떠돌며 자신이 포착한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의 작품을 보면 도시와 그의 창작은 떼어낼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도시는 그에게 좋은 영감을 받는 장소이자 작품의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발굴해 내는 곳이다. 특히나 스페인 출신으로서 이국적인 일본의 풍경에 흥미를 느끼고 자주 매료되는 것 같다. 그가 그려낸 작품은 테마에 맞춰 전시되는데, 전시 공간과 어우러져 좋은 시너지를 낸다.      


이런 전시 구성은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전시 구성도 인상적.. 저 열린 문으로 보이는 그림이 계속 변한다


 단순히 도시를 떠돌며 포착해 낸 그림들뿐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생긴 변화를 주변인들을 통해 그려낸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세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그의 그림도 그림이지만, 작품과 함께 전시된 그의 생각들 때문이다. 한글로 번역되어 때로는 작품처럼, 때로는 해설처럼 붙어있는 문장들은 그림과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작품의 해석과 거기에 담겨있는 감정을 읽는 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도 하지만, 때로는 글과 함께 그림으로 자신이 담아내고자 했던 것을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던 선택은 인상적이었다. 만약 그림만 진열되어 있었다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글과 그림을 어우른 이 전시를 보면서 AI가 추월하기 어려운 영역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꽂혔던 문구 중 하나

   

 반면 이 전시의 단점은 그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패드로 작업한 결과물들은 기존의 작품과 달리 작업에 공들인 시간이나 기술적인 완성도를 간과하게 한다. 기존의 회화에서 색감이나 붓터치처럼 작품을 구현해 낸 작가의 역량을 눈여겨보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시큰둥해지는 전시이기도 하다. 즉, 이 전시는 작가의 아이디어와 시선, 그리고 고유의 감성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코드가 맞으면 재미있을 것이고, 맞지 않는다면 그저 그런 전시로 남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를 떠올리게 했던 그림


 최근 많은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전시 트렌드처럼, <문도 멘도 판타스틱 시티 라이프>도 사진 찍기 좋은 전시를 표방한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고, 적당히 관람하다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을 한두 자리 마련해 둔 느낌이다. 서촌의 전시관들이 그렇듯 그라운드 시소도 넓고 쾌적한 전시관은 아니니 그 점만 양해할 수 있다면 <문도 멘도 판타스틱 시티 라이프>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이 전시를 보러 가겠다면 되도록 햇살 좋은 낮에 가보길 권한다. 그라운드 시소의 건축물은 예쁘기로 유명하니 서촌 일대와 함께 나들이처럼 가기 좋을 것이다. 특히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함께 가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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