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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Aug 25. 2023

[서평] 와인의 시초에서 내추럴 와인까지

'포도에서 와인으로' - 이석인

 와인을 다룬 책은 많다. 대부분 서구 역사에 오랜 동반자였던 와인의 태생부터 변천사, 그리고 왜 와인이 특별한 음료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서술한다. 


'포도에서 와인으로' 표지

 <포도에서 와인으로>라는 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이 만약 평소 와인에 관심이 많고 그와 관련된 서적을 뒤적여본 적 있다면 아마 이 책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커다란 역사의 줄기를 가지고 와인과 관련된 온갖 지식을 엮어낸 서구 작가의 책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와인을 다룰 때 언급해야 하는 지식들을 충실히, 그러나 단편적으로 엮어낸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단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정보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 이 정보들을 하나로 엮어가는 흐름이 없다. 두 번째는 그 정보를 전달하는 문체가 딱딱한 편이라는 것. 이 점은 개인의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 책에서 소설 같은 문체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만 내가 딱딱하다고 표현했던 것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 드러난 것처럼 지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작가는 와인 이야기를, 역사와 인문학, 온갖 잡설과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가로축과 세로축을 언급하며 문장을 펼쳐낸다. 나는 이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사와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이과적인 접근이라니! 와인을 술이 아닌 대화라고 믿고, 소통의 다리라고 여기는 나에게는 낭만과 정서를 걷어차 버리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이 차가운 시선은 차가운 문체를 낳았고, 책에서 딱딱한 문장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와인뿐 아니라 서구권의 역사와 종교, 신화 등 광범위한 지식을 정리한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WSET 디플로마니 뭐니 하는 말이 표지에 적혀있지만, 방대한 내용을 정리한 사람이 한국인, 그것도 여성이라는 점은 놀랍다. 나의 지독한 편견 탓이지만, 왠지 ‘술’에 ‘덕후’라는 키워드를 덧붙이면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책을 탈고할 당시 저자가 만삭의 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잠시 차치하고, 이 책의 장점을 언급할 때 단지 한국인 저자라는 사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별함은 2022년에 쓰였다는 것이다. 즉, 와인의 최근 이슈뿐 아니라 21세기에 들어 변화된 와인의 새로운 시각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과거에 와인 가격을 좌지우지했던 유명 평론가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입맛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사이드 웨이’니 ‘와인 미라클’ 같은 와인 덕후들이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코로나가 언급되는 것은 21세기, 가장 최신에 쓰인 책이기에 가능하다. 


 그렇게 업데이트된 최신 정보 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내추럴 와인에 관한 것이었다. 오가닉, 유기농 같은 키워드들에 민감한 시대에 등장한 내추럴 와인은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작가는 이 내추럴 와인이라는 명칭을 정식 인증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양조 철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정 부분 마케팅적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존 와인에 사용되는 이산화황의 유해성 부분, 그리고 내추럴 와인의 인증 방법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주관을 여러 지식과 경험담을 통해 확고하게 전달한다. 내추럴 와인이 인기를 끄는 시점에 한 번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의 최신 내용이 다뤄지는 후반부에서는 앞서 언급한 한국인 저자라는 점이 시너지를 발휘한다. ‘신의 물방울’ 이야기, 차이나 머니가 끼치는 영향, 그리고 중국과 일본, 한국의 와인 현황을 다룬 내용은 한국인 저자가 아니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내용일지도 모른다. 특히 중국 파트에서는 중국의 역사에 등장한 와인의 내용까지 일일이 언급해 두었는데, 서양사뿐 아니라 동양사까지 파고든 저자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주류세 문제를 비롯해 한국 와인 시장의 한계, 첫 와인의 시작점이었던 중동의 와인, 기후변화, 인터넷과 빅데이터까지 꺼내 들며 와인과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데, 아마 이 후반부가 책이 갖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컬러풀한 사진과 그림을 실어서 한국인 독자의 입맛에 맞게 구성했다. 그래서 평소 와인에 대해 알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접하기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와인에 대한 지적 탐구가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허나 워낙 잘 정리된 내용 안에 그동안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디테일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관점에서 논의된 화두들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비록 책의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갑고 딱딱하며, 그래서 정감이 가지 않고, 책을 읽고 나서도 와인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잘 들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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