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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Sep 29. 2023

[서평] <총균쇠>는 어떻게 21세기에도 살아남았나?

'총균쇠' - 제러미 다이아몬드

 소위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언급되는 저서들이 있다. 인문학 분야의 고인물(?) 중에 대표적인 책은 <사피엔스>와 <총균쇠>일 것이다.

 두 서적 중 <총균쇠>의 경우 번역 등의 문제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걸 보완한 2013년의 개정판은 전보다 훨씬 읽기가 편해진 것 같다. 

 대부분의 유명한 저서들이 그러하듯 이 책도 꽤나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1997년 처음 출간된 책이 26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다뤄지는 것을 보면 왜 그럴까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총균쇠> 개정판 책 표지

 <총균쇠>라는 책을 이해하는 데는 책이 출간된 시기가 중요할 것 같다. 20세기는 서구 중심의 패권이 지금보다도 더 강력했다. 2차례의 세계대전은 전 세계가 서구에 의해 식민 분할되던 시대가 정점에 이르면서 거대한 충돌을 불러일으킨 전쟁이었다. 그 이후로 미국에 의한 힘의 재편이 이뤄지긴 했지만, 서구는 뛰어나고 앞서 나간 국가라는 인식이 계속해서 팽창해 나갔다. 식민 지배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그들과 같은 경제와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여 그들과 같은 선진국이 되는 것이 모든 국가의 목표처럼 여겨졌다. 이 책은 그런 기류가 강하던 시절에 출간되었다.  

    

 우리가 흔히 서양 역사를 공부할 때 간과하게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서양은 오랫동안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중동과 아시아에서 흘러든 문명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지역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 시절처럼 중동에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던 적은 드물다. 수 차례의 십자군 원정도 좌절되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영토 일부를 아랍 세력에 빼앗긴 채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배경이 된 베네치아도 중동에서 흘러들어온 문물을 중개 무역하면서 부를 쌓은 경우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유럽이 우리가 인식하는 유럽이라는 지역을 넘어서 다른 지역에 영향을 끼치는 패권 세력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런 유럽이 중세를 지나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시작으로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 동남아시아, 더 나아가 동아시아까지 진출해 식민지를 세워나갔다. 그 기조가 현대까지 이어지면서 서구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특정 인종이나 특정 문화가 뛰어나다는 시각도 등장했다. 하지만 <총균쇠>는 그 이유를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통해 집요하게 분석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총, 균, 쇠로 요약되는 요인 때문이며, 이는 서구의 문명이나 서구인들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던 지형적 특성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다름 아닌 미국인 학자가, 가장 강력한 패권국의 내부자가 내세웠기에 더욱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특정 인종이나 문명이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전 세계인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당시의 기조와도 잘 맞닿았을 것이다.  



 이 책을 도전하는 데에는 분명한 난제가 존재한다. 2013년의 개정판이 문장을 다듬으면서 과거에 지적되었던 가독성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장벽이 있다고 느꼈다.      

 하나는 지나친 디테일이다. 저자인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요즘 유행하는 MBTI로 풀이하자면 극 S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 두꺼운 분량의 책 상당 부분에서 지나치게 상세하며 장황한 내용을 풀어놓고 있다. 이는 학자로서 올바른 태도다. 하지만 논문에서나 다룰 법한 집요한 디테일을 대중을 상대로 한 책에서 풀어내는 것이 효율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내가 과연 이런 내용까지 알고 있아야 하는가, 답답함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거기다 이 디테일이 굉장히 길고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는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보통의 책들은 주석을 통해 내용이 장황해지는 것을 막기 마련이다. 혹은 자신이 풀어놓는 장황한 디테일이 어떤 주장을 위한 것인지 명확히 드러낸다. 이 책의 초반에서 주로 그랬듯이, 하나의 주장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등장하는 디테일이라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꺼운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은 이런 장황한 내용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큰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정리가 확실히 되지 않으면서 독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장벽은 총, 균, 쇠로 집약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주장이 서구 패권사를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중후반으로 갈수록 장황해진다고 느끼는 것은 총, 균, 쇠를 앞세운 유럽 문명이 세계 다른 지역을 제패한 이유로 딱 떨어지는 사례가 아메리카 대륙, 특히나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겨우 168명으로 8만 명의 군대를 거느린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굴복시켰던 사건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총, 균, 쇠로는 아프리카와 인도,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해 나간 대항해시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에서 저자가 고백했듯, 어떻게 서구 세력이 거대한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는지 또한 설명하지 못한다.   

   

 서구 패권국들이 하나씩 식민지를 건설해 중국에까지 이르렀을 때는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리어 중국으로부터 부를 빼앗겼고, 이를 만회하는 과정에서 아편 전쟁과 같은 사건을 일으켰다.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를 확장해 가던 패권국들은 어째서 중국이라는 대국 앞에서 무력했고, 어떻게 해서 결국엔 중국을 굴복시켰는가. <총균쇠>는 거기까지 설명하지 못한다. 학자로서 하나의 가설을 세워볼 법도 한데 제러미 다이아몬드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연구해서 잘 아는 내용이 아니면 섣부른 추측이나 언급을 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학자로서 훌륭한 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저자로서는 한계를 갖는다. (<사피엔스>가 그와 반대 지점에서 대중에게 어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의 그런 특성 때문에 이 책은 중반에서부터 큰 맥락의 이야기를 상실하고 그가 연구했던 내용에 치중해 설명을 이어갔는지도 모른다. 수두룩한 디테일을 계속 읽고는 있지만 핵심 주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헤매게 되는 이유다. 


 이 모든 게 나의 이해력 부족 탓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저자가 학자로서의 특성을 조금 내려놓고 큰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디테일로 구성해 갔다면, 그리고 그 주장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이 책이 훨씬 읽기 쉬웠을 거라는 주장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책에 언급된 많은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특히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 동물의 가축화와 거기서 파생된 ‘균’이 등장한 파트, 문명뿐 아니라 농업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지정학적으로 설명한 내용은 엄청나게 몰입해서 읽었다. 


 그럼에도 <총균쇠>가 반쪽짜리 저서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정 인종과 문명이 우월하지 않다는 그의 주장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환영받았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서 결국 서구의 문명이 세계를 장악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전부 풀어내지 못했다. 부족한 부분은 아마도 정치와 경제, 군사라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러미 다이아몬드의 전문 분야가 아니고, 앞서 언급했듯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내용이 아니면 함부로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혹시라도 책에 도전했다 실패한 이들이 있다면 꼭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는 지엽적인 내용에 집착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작가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학자로서는 무척이나 올바른 태도지만, 지리학 전문인 그의 연구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총균쇠>가 완성하지 못한 내용은 21세기에 쓰인 다른 저서들을 통해 각자가 퍼즐을 꿰맞춰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라는 것과, 늘 약자와 변방으로 여겨졌던 이들이 전세를 뒤집는 역사는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책에서 얻어가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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