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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May 05. 2024

세상을 읽는 탈미국적 시선 박찬욱은 어떻게 그려낼까?

<동조자> - 비엣 타인 응우옌

 박찬욱 감독의 신작 드라마 <동조자>가 공개되었다. HBO의 제작으로 완성된 드라마는 현재 쿠팡 플레이를 통해 공개되고 있고, 이 글을 쓰는 현시점에 3화까지 공개되었다.     

이 작품에는 한국계 배우인 산드라 오도 출연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볼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소식을 처음 접했던 작년 이맘때였다. 베트남계(정확한 발음은 비엣남이지만 워낙 베트남이라는 표기법이 익숙해져 있는지라 이 글에서는 베트남이라고 적는다. 양해 바란다.) 미국 작가인 비엣 타인 응우예의 이 장편 소설은 이미 민음사를 통해 1, 2부로 나뉘어 2018년 한국에 출간된 적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호평과 달리 한국 독자의 반응은 미비했고, 이후 2023년에 한 권의 책으로 통합되어 재출간된다. 나는 그중 2부로 나뉘어있는 2018년 버전을 읽었다.      


 소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 협조하던 남베트남 군인 대위가 베트남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나’의 시점으로 긴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주인공의 특성이 중요하다. 그는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자 미국과 베트남 사이를 오가며 통역하는 장교이다. 그리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사이에 놓인 스파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인 동조자(The Sympathizer)는 바로 스파이를 뜻하며, 소설의 첫 문장에서 주인공은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이를 드러낸다. (이 문장은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에서도 내레이션 대사로도 쓰였다.)     


 소설을 읽다 보면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하나는 작가의 어마어마한 필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다. 

 비엣 타인 응우예는 짧은 문장 안에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묘사를 많이 한다. 그리고 지나치듯 적은 문장 안에 참 많은 지식과 사유를 풀어놓는다. 그는 단순히 스파이의 세계뿐 아니라, 베트남 군인, 미 CIA, 당시 베트남의 문화와 사정, 그리고 미국의  정치 문화 사회, 거기다 베트남 내부에서 바라보던 남과 북에 대한 시각까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대단한 건 그 많은 정보를 풀어내는 과정이 참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 이야기는 보통 폭발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 ‘나’의 사유를 통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아마도 이러한 필력이 인정받아서 2016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베트남전은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던 미국이 처음으로 패배했던 전쟁이다. 우리는 이것을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소설에도 등장하듯 ‘승자들 대신에 패자들이 역사를 쓰게 될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베트남전에 대해 우리는 미국의 자성적 목소리, 반전이라는 키워드로 점철된 시각을 주로 접해왔다. 하지만 정작 베트남의 시각으로 전쟁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이 독특한 지점을 갖는 건 베트남과 미국의 시각을 오간다는 것이다. 작가는 모두 이해하면서도, 양측을 모두 비판한다. 중립적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을 접하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비판하며 얻어낸 것들을 풀어낸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이 스파이물을 통해 베트남과 미국, 승자와 패자, 세계의 강자와 약자로 이분법 되던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접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미국으로 넘어간 대위가 미국인들에게 그들은 ‘아픈 패배를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기념품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다. 베트남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이 패배한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신선한 견지다. 


 이 방대한 지식과 신선한 사유가 작가의 엄청난 필력을 통해 드러난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당시 그가 풀어놓는 것들을 전부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그건 긴 이야기를 관통하는 작가의 필력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특징이 단점으로 와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시선으로 많은 사유가 풀어진 이 소설은 사건의 진행이 빠른 편은 아니다. 이야기의 속도감에 중점을 두는 독자, 혹은 베트남전이나 세계를 보는 시각에 큰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이 소설이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한다고 느껴질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냐고 답답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외부의 시각이 아니라 주인공이 체감한 것을 중심으로 사건을 파악하게 된다. 자칫 집중력을 잃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발생한다. 소설이 전적으로 ‘나’의 서술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많은 사유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독자는 간혹 길을 잃기도 할 것이다.      


 베트남전, 탈미국적 시각, 세계정세, 이방인, 소수자의 입장.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책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장벽이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이야기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큰 흥미를 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드라마는 이 지점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과 주로 접촉하는 CIA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내세워 전 세계 관객의 이목을 끌려고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의 비중을 올라갔고, 배우에 어울리는 성격으로 무장되었다.      


 아직 드라마의 초반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큰 틀은 유지하되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결정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는 드라마 1화와 2화에 걸쳐 등장하는 공항 탈출신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작품 특유의 서술과 느린 진행에도 이렇게 긴장감 넘칠 수가 있느냐며 나의 집중력을 확 높였던 장면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다뤄진 이 공항 탈출신은 소설에 비하면 너무나 시시했다. 아니, 시시한 정도가 아니라 홀대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박찬욱 감독이 포인트를 두려고 한 지점은 원작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원작에 깊은 인상을 받은 독자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박찬욱 감독이 새로운 스파이물의 드라마를 맡았다고 할 때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그는 <리틀 드러머 걸>이라는 작품으로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감독의 유명세에 비해 작품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성과는 조금 거리가 먼 작품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편집권을 가진 감독판에서 좀 더 흡입력을 느꼈고, 서사의 불친절을 조금 걷어내면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실패했다. <동조자> 역시 비슷한 길을 걷게 될까? 지금까지는 기대보다는 좀 더 신중함이 앞서지만 그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작품으로 연출에 한껏 물이 오른 상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손을 잡은 박찬욱 감독이 원작 소설의 탈미국적 시각을 어떻게 영상으로 보여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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