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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May 13. 2024

개인에서 집단으로: 상실을 다루는 의미 있는 방법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이 소설의 제목을 접하고 한 번에 외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항상 수식을 헷갈리게 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와 <더 리더: 책을 읽어주는 남자>, <디아워스> 등을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 미국의 국민 배우인 톰 행크스, 산드라 블록 등이 출연하였음에도 한국에서는 극장개봉 되지 못하고 곧바로 VOD 시장으로 직행하였다. 영화를 본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 결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바로 9·11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한국 관객들에게 공감을 사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은 9·11 테러가 벌어졌을 당시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9·11이 전부인 작품은 아니니 안심하길 바란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그날 무역센터에서 회의 중이던 아버지를 잃고 만다. 이 사건으로 아이는 커다란 상실을 느끼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물건을 살펴보던 중 파란색 꽃병을 깨게 되고 그 안에서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블랙’이라고 적힌 열쇠가 무슨 용도인지를 찾기 위해 뉴욕 시내에 있는 모든 ‘블랙’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이 오스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모험담과 오스카의 조부모의 편지로 진행되는 그들의 사연 이 두 줄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초반에는 오스카의 모험이 시작되는 지점까지가 흥미롭다. 아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오스카의 독특한 상상력과 솔직한 표현이 매력적이다. 특히 상실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묘사하는 지점이 좋다. 어른들과 달리 마음껏 분노하고 슬퍼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대로 표현해 내는 문장들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아마 이 아이의 시점으로 다뤄지는 상실을 보며 위로를 얻는 사람들도 꽤 있을 듯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스카의 명함


 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읽은 입장에서 소설의 진짜 매력은 오스카의 이야기가 아니라 편지 형태로 진행되는 조부모의 이야기였다. 아버지인 토머스 셸의 죽음은 오스카와 조부모 사이의 연결고리이기가 사라진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상실을 다루며 시간적 간극을 메우려 한다.


 조부모의 사연은 그들이 처음 만나고 부부 생활을 시작했을 아주 오래전 시점(1960년대)과 현재를 오간다. 이들의 사연을 엮어내는 부분에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데, 일견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근대 미국 단편 소설의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젊었던 시절,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힘든 시절의 사연을 풀어내는 부분에서 무척 문학적인 묘사가 곁들여진다. 예를 들면 조부모가 결혼했던 초창기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파트 안에 존재하기를 멈출 수 있는 ‘무의 공간’과 ‘존재의 공간’을 나눠둔다든지, 말을 잃어버린 할아버지가 왼손과 오른손에 ‘Yes’와 ‘No’를 써서 손바닥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으로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책이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한 표현들을 많이 시도했다. 한 페이지에 한 문장만을 남겨둔다던가, 여러 장의 공백을 나열한다던가, 문장의 배열을 다르게 하기도 하고 중간에 사진을 삽입해두기도 한다. 만약 이 소설에 장벽이 있다면 그 지점일 텐데, 이러한 표현들이 어떤 독자에게는 신선하거나 유의미한 시도처럼 느껴지는 반면, 어떤 독자에게는 군더더기나 편법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이렇게 삽화라든지 빈 여백 등을 적극 활용한다


 이러한 시도 때문에 이 소설은 글이 아니라 책이라는 매개체로 상실을 다루고 있다고 봐야겠다. 교정을 위해 빨간펜을 사용한 페이지와 여러 개의 문장이 겹쳐버린 부분에서는 더욱 그런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가급적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은데, 적지 않은 분량에도 책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문장이다. 소설은 상실의 감정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 마음속 슬픔을 발견하고 언어로 드러내는 데 강점을 보인다. 이 말은 반대로 이야기의 역할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작품의 초반 흥미로웠던 오스카의 모험은 뒤로 갈수록 힘을 잃는 편이다. 이러한 약점은 조부모의 사연과 교차로 진행되는 구성, 그리고 감정을 흔드는 문장과 그 표현력으로 대체로 상쇄되는 편이다.     

 

 영화의 경우에는 소설과는 다른 길을 갔다. 아마도 러닝 타임의 문제였겠지만 조부모의 사연을 완전히 걷어냈고 오스카의 시선에 집중했다. 그리고 영화 쪽이 좀 더 상실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선명해지는데, 소설에서는 감정을 다루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이야기를 좀 더 한 곳으로 모아 무엇이 우리를 위로하고 상실에서 극복하게 하는가를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참 좋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와 소설이 똑같이 제시하는 것은 연대다. 이 작품에서 한 어린아이가 찾아와 무작정 블랙이라는 사람을 찾고 열쇠의 용도를 물을 때 뉴욕의 어른들이 냉정하게 내치지 않았던 것은 (물론 그런 사람도 있었지만) 9·11이라는 공통의 아픔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상시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 아이를 외면하지 않았던 이유는 같은 집단 안에 같은 상실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연대를 통한 상실의 극복이라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집단으로 공유된 아픔과 기억을 연대로 애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얼마 전 10주기를 맞았던 세월호 때도 그랬고,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이태원의 10·29 참사 때도 그랬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상실을 다루는 방법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좀 더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소설과 영화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고? 그건 취향의 차이겠지만, 오스카의 이야기만 본다면 영화 쪽에 손을 들고 싶고, 소설은 조부모의 동화적인(이것이 밝고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란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야기에 강점을 보였다. 양측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장점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각기 다른 매력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 반대여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야기가 확장되어 있는 소설을 나중에 접하는 것이 그래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웨이브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추가 비용이 들겠지만 숨겨진 명작처럼 언급되는 작품인 만큼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의 제목에 쓰인 표현은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다만 '엄청나게 시끄러운'이나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식으로 따로 쓰이는데, 공통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뉴욕에 사는 오스카가 겪은 9·11이라는 사건을 수식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건은 물리적으로도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사람을 잃게 했으니 오스카의 심경을 드러내기엔 더할 나위 없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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