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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May 12. 2023

[서평] 게임.. 좋아하세요?

'게임의 사회학' - 이은조

 내가 남들보다 못 미치는 능력 중 하나가 게임을 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여기서 말하는 게임이란 모든 전자기기를 통한 게임을 말한다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컨트롤하는 순발력은 물론이고긴장감을 견뎌내는 단단한 심지게임의 규칙을 파악해 이용하는 습득력도 떨어진다거기다 한 시간만 게임을 해도 손목이 아프고 눈이 피로해지는 육체까지 갖고 있다 보니 게임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한다는 요즘 세상에는 참으로 불운한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직접 하기보다는 구경하는 편이다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현란한 컨트롤을 선보이거나시원시원하게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 재미있는 영화라도 구경하는 것처럼 넋 놓고 쳐다봤다요즘도 유튜브에 올라온 명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스토리와 캐릭터그리고 영상 매체와 큰 영향을 주고받는 연출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곤 한다


'게임의 사회학' 책 표지

 게임은 정말 다양한 장르로 발전해 왔는데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건들도 많이 벌어졌다이은조라는 데이터 과학자가 쓴 게임의 사회학은 이러한 게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책의 초반에 언급되었던 게임 중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일명 와우(WoW)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2005년 출시된 던전에서 특정 기술에 걸리면 일정 시간마다 체력이 깎이고접촉한 캐릭터에게 그 현상을 옮기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오염된 피라고 불린 이 현상은 던전을 나가면 사라지게끔 구현되었는데일종의 버그로 던전 밖에서도 이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초반에는 장난처럼 여기며 유저들이 다른 캐릭터들을 감염시키고 다녔다문제는 마을의 NPC가 감염되면서 발생했다. NPC는 게임에 등장하는 조연들로 시스템 특성상 죽지 않게 설정되어 있다. 이 NPC가 오염된 피에 감염되면서 마을에 들어온 캐릭터들에게 질병을 퍼트리는 슈퍼 전파자가 된 것이다질병이 확산되면서 서버 관리자는 감염된 캐릭터들을 격리시키려 했으나 완벽한 격리가 불가능했고어떤 이들은 다른 캐릭터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구석진 곳에서 죽음을 맞기도 했지만어떤 이들은 도시를 누비며 다른 캐릭터들을 마구잡이로 감염시키곤 했다또 질병이 퍼진 도시로 들어오는 캐릭터들에게 입구에서 계속 경고하는 캐릭터나격리를 피해 도망간 캐릭터를 붙잡으려고 자경단을 결성하거나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한 캐릭터를 살려보겠다고 치료에 전념하는 캐릭터치료 효과가 있다는 거짓 아이템을 파는 캐릭터등 다양한 현상이 발생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그렇다코로나19로 팬데믹을 맞이했던 우리가 겪었던 일들과도 유사하다이 사건은 많은 연구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고당시에 일어났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제작자인 블리자드 사에게 관련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만약 그때 데이터가 공개되고 관련 연구가 벌어졌다면그랬다면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유례없는 상황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참고할 만한 연구 자료가 손에 쥐어지지 않았을까


 이처럼 게임의 사회학은 게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가상의 사건과 현실을 연결 짓고 있다물론 현실과 게임이란 가상공간은 다르다현실에서 사회과학 연구가 어려운 것은너무나 많은 변수와 각기 다른 개인의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그래서 단순히 게임상에서 발생한 팬데믹 상황을 현실로 가져와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게임은 모든 유저가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는 점똑같은 규칙과 동일한 환경 안에서 계속 성장한다는 점에서 현실보다 연구에 용이한 점이 있다그래서 현실에 그대로 적용 가능하지는 못하더라도인간의 행동 양식에 관한 예측 연구는 가능할 것이다게임 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돌아보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총 211페이지에 불과한 적은 분량이지만 충실하게 내용을 다루고 있다단순히 저자의 직관이라던가 인터넷상에 떠도는 해석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실제로 진행된 논문과 연구그리고 그것들의 단점과 맹점까지 언급하면서 각 사건을 분석한다때로는 대답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의문을 해소해줬으면 하는 내용도 있다하지만 확실한 것은 챕터마다 다루는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는 것이고어느 것 하나도 실제 현실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게임 내에서 주어진 당근과 채찍이 유용하게 활용된 예한 조직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유리한지게임 속의 아이템과 가상 재화를 현실 경제와 연결 지어서 이야기를 풀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실제 게임 관련 일을 하면서 사회과학적 가치를 깨달은 학자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언급된 내용의 상세한 답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전부 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책에서 다룬 사건 중 흥미로웠던 것들을 몇 가지 언급해 보자.

 개인적으로는 강력한 권한으로 폭거하고 있던 혈맹에 맞서 나머지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 대항했던 ‘리니지 2’의 바츠해방 전쟁도 흥미로웠지만, ‘아키에이지에서 벌어졌던 재판제도가 무척 재미있었다. ‘아키에이지의 재판은 게임 속에서 벌어진 악행을 현실 범죄로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게임 속의 재화를 어떻게 현실의 재화로도 인정할 것인지범죄가 벌어진 지역에서 재판과 수사가 이루어지는데 이 권한을 어디에 줘야 하는지 등 가상 세계의 범죄와 관련된 흥미로운 화두를 다룬 파트에 등장한다언급한 내용들도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게임 내에서 벌어진 악행을 게임 내에서 처벌하는 시스템을 갖춘 아키에이지의 사례는 현실 사례에서 가상 세계의 답안을 찾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간단히 요약하자면게임 내에서 다른 캐릭터의 물건을 훔치거나 살인을 저지른 캐릭터는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고그 상태에서 죽으면 재판장에서 부활하도록 만든 것이다이 재판장에서 캐릭터는 본인의 죄를 변론할 기회가 주어지는데이를 듣고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캐릭터들(다른 유저들)에 의해 유무죄가 결정되도록 했다이는 미국 초기 서부시대에서 지역에서 시행된 배심원 기반 재판 제도와 유사하다고 한다가상 세계의 악행을 가상 세계 내에서 처벌하기 위해 현실의 실제 시스템을 참고한 것이다저자는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게임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데그 대표적인 사례로 다뤄지기도 한다이는 좀 더 확장하면 게임 내에서 법과 규칙을 만드는 문제그걸 위해 온라인상에서 유저들의 투표를 받는 문제로도 연결 지을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선거 투표와 관련해 온라인 투표에 대한 찬반 여론을 떠올리게 해서 흥미로웠다혹시라도 가상 세계가 참고할 만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게임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없을 수도 있다하지만 현실과 가상을 가로지르는 인간 행동의 양식이 비슷하다는 점에는 흥미를 느낄 것이다이 책은 그 점을 집요하고 과학적으로 다루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내가 그랬듯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그리고 그 사건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이 책의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게임을 통해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한 가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게임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이 무지막지하거나 무법에 가깝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심즈 온라인의 서비스 종료를 맞이했던 사람들의 사례나 호혜성에 관한 파트를 보면 게임 중에 접한 욕설에 성악설을 확신하던 당신의 마음이 조금 정화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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