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제임스 볼
언제부터인가 팩트 체크라는 말이 언론 미디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미디어의 수가 증가하고, 언론사의 보도뿐 아니라 일반인의 글이나 제보가 온라인에서 뉴스와 같은 파급력을 갖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뉴스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명하는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의 역할이 수동적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2025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안다. 이것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모든 언론사에게 팩트 체크라는 사명을 안겨다 준 것은 가짜 뉴스, 영어로 fake news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이보다 더 나아간 개념이 등장했나 보다. 영어로는 bullshit, 책에서는 ‘개소리’라고 번역한 녀석이다.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철학 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가져온 표현으로 책에서는 사실 와전, 반쪽짜리 진실, 터무니없는 거짓말 모두를 포괄하기 위해 이 용어를 가지고 왔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뒤 표지에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적으로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판가름 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쏟아내는 거짓 주장들 정도로 이해했다. 책의 서문에서는 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로 브렉시트(Brexit, 유럽 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결정이 미치는 파급이 자국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이 쓰였던 2017년에는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영향력 면에서 미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더욱 엄중하게 바라본다. 흥미로운 건 25페이지에 적은 내용이다.
트럼프는 미디어가 자신의 취임식에 모인 관중 수를 25만 명으로 거짓 보도했다며 언론을 비난하면서 사실은 100만여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또 여론조사 기관들이 자신의 지지율을 낮게 조작했고, 미국중앙정보국(CIA)이 러시아가 자신을 지원하려고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날조했으며, 익명의 기관들이 부정투표 수백만 건을 묵인했다고 비난했다. 본인이 이긴 대선에서 말이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현재 내란 우두머리로 기소되어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을 앞둔 윤석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지금 펼치고 있는 주장과 아주 유사해서 몇 가지 고유명사만 바꾸면 될 정도지만, 이미 트럼프가 1기 대통령 시절에 했던 주장이다. 어떤가? 흥미롭지 않은가? 트럼프를 만든, 한국에서는 윤석열을 움직였다고 봐야 하는 개소리(Bullshit)에 대해 저널리즘적으로 파고든 책이 오늘 소개할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원제: Post-truth: How Bullshit Conquered the World)>다.
저자인 제임스 볼은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위키리스크> 등에서 활동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 NSA 폭로’, ‘위키리크스 관타나모 파일’, ‘조세 피난처’ 사건 등을 취재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 출신의 기자다. 이 책은 JTBC 뉴스룸 <팩트체크>를 진행했던 이가혁 기자가 감수를 맡았는데, 그가 책 서두에 실은 글에서 언급한 국내 가짜뉴스들을 되짚어 보면 2019년 한국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거짓말들이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독자들로서는 외국의 사례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이슈를 아주 가까이에서 체감하도록 한 좋은 글이다.
책은 1부 <누가 어떻게 우리를 조종하는가>, 2부 <탈진실의 시대, 개소리가 진실을 압도한다>, 3부 <우리는 왜 개소리의 유혹에 넘어가는가>, 4부 <진실을 수호하는 가장 현명한 대처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상을 짚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처법까지 제안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책 보다 미래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그 대처법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개소리가 판을 치는 데에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미디어의 관행이 거짓말을 하는 쪽에 유리할 뿐 아니라, 온라인을 배경으로 한 언론사의 수익 모델이 개소리 확산을 더욱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매체가 전하는 내용보다 극단적 주장을 더 믿으려 한다는 필터 버블 효과나, 레거시 미디어의 문제점과 온라인 세계의 피드, 알고리즘의 문제점도 지적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돋보이는 부분은 모든 정보의 수용자인 대중의 책임도 묻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 개소리가 판치는 미디어 환경에서 뉴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내 믿음을 키우는 정보는 계속 찾아보고,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 '확증편향'과, 다트머스대학의 정치학과 교수 브렌던 나이한과 제이슨 라이플러가 발견한 ‘역화 효과’를 통해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적는다. '역화 효과'는 내가 굳게 믿는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알게 될 때, 신념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더욱 굳히는 현상이다. 반론을 듣고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의 심리 때문에 개소리가 더욱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화 효과를 다룬 연구를 통해 당신이 온라인 논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를 확인했다. 당신이 각종 사실과 수치, 링크, 인용을 꺼내 들기 시작하면 상대방은 자기 생각을 훨씬 강하게 고수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열정적으로 근거를 쏟아내면, 당신의 두개골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역화 효과로 두 사람 모두 원래 지녔던 신념이 더욱 확고해진다.
이 많은 내용과 주장들이 책에서는 다소 두서없이 나열되었다. 깔끔하게 한 방향으로 잘 정리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책이 읽기 힘들다거나,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쓰인 시점이 2017년이라는 점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는 맞지 않는 내용도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저자는 이 개소리가 세상을 정복하는 바람에 벌어진 거대한 사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자세히 분석하며 우리가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 든다. 둘 다 개소리가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트럼프의 경우에는 오바마의 출생 문제를 근거 없이 제기하던 인물에서 대통령까지 올라갔다. 책의 분량이 제법 되는 편이지만 빠져들면서 읽게 되는 이유다. 그리고 2025년의 우리는 한반도에서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을 목격했다. 그의 주장은 이런 개소리라 불리는 정보들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 또한 이 거대한 시류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관심 갖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소리라 불리는 가짜 뉴스, 거짓 선동이 판을 치는 이유를 책이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 이유는 8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에서 저자가 주장한 것들과 몇 가지 포인트들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언론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이 책이 주석에서 표기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책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개소리 확산의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는 원인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유튜브 중심의 새로운 개인 미디어 환경을 언급하며 경제적 이득을 꼽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개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언급할 것이며,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며 정치적 이득, 혹은 종교적 이유를 거론하기도 할 것이다. 8년의 시간 차이로 저자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각자 정리해 보는 것이 좋겠다. 2025년의 시점에서는 새로울 게 많지 않은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거대한 사건들을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혹시 또 알겠는가? 머지않아 세상 어디에선가 개소리에 휘둘려 국민 전체가 멍청한 선택을 하는 끔찍한 일이 또 벌어질지.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한국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