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미국에서 일본을 분석한 최초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4년 6월 미 국무부로부터 일본 연구를 위촉받는다. 문제는 당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일본 연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류학(Anthropology)은 제국주의적 욕망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처음 보는 낯선 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그들과 교류하고 이권을 챙기기 위해 상대를 공부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현지에 장기간 체류하며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던 루스 베네딕트는 그 대신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과 교류하고, 잡지, 신문, 영화, 정부 간행물 등을 통해 일본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뭐든 기록하는 일본인들의 습관이 도움이 되었다) 이후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 방식은 널리 받아들여져 인류학의 일부가 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국화와 칼>은 현지에 가보지 않고 간접 자료를 통해 그 나라를 연구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책의 서두에 밝혀있듯 이 책은 일본의 경제, 사회,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태평양 전쟁이 지속되면서 일본을 상대하던 미국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본이 기존 전쟁에서 보이던 관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미카제처럼 일본 군인들은 왕을 위해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기도 하고, 포로가 되면 수치스러워하며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통 전 병력의 4분의 1 혹은 3분의 1 정도가 전사하게 되면 저항을 멈추기 마련이지만 그보다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세계 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포로들은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돌렸지만, 일본 포로들은 황실 숭배와 군국주의 전쟁 정책은 분리되어야 한다며 일왕(천황) 비방을 거부했다. 보통 포로로 잡히면 인도적 차원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일본군에 잡힌 포로들은 그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에서 화를 내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전쟁이 마무리되어 가고, 전후 처리 문제를 고심하면서 미국은 일본이란 국가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중에는 일본은 절대 항복을 안 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연구를 위촉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쓰인 책이다 보니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다. 흔히 이 책은 일본인을 분석한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인을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오래전, 무려 20세기 중반에 쓴 글이라 현대의 정서에 맞지 않는 내용도 있거니와, 우리가 인식하는 일본과 다른 면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일본을 바라보던 미국의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일본을 이렇게 바라봤기 때문에 전후 일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라고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책이지 일본을 이해하는 목적이라면 다른 책들이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 책이 현대 일본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좀 더 길게 말하자면, 천황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유지하는 국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평화 헌법을 갖게 된 국가가 된 것이다.
역사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태평양 전쟁의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두 방 터진 이후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때까지도 미국 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일왕(천황)이 백기를 들자 극렬히 저항하던 모든 사람이 거짓말처럼 총부리를 내렸다. 일본이 침략했던 모든 지역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며, 한반도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도 해방을 맞이했다.
맥아더를 위시한 미군정은 일본 내로 들어가 전후 처리 문제에 골몰했다. 일왕은 모든 전쟁의 책임자였으나, 그걸 동시에 끝내버린 인물이었다. 만약 일왕을 그대로 전범자로 처리할 경우 향후 일본의 안정이나 미군정의 통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미 전쟁 중에 일본군의 극명한 저항을 경험했던지라, 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도 일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전후 처리를 위해 일왕을 전범 혐의에서 빼주되, 그 밑의 군부 수뇌부들은 전부 유죄를 내리는 정치적 합의에 이른다. 정치적 합의라 표현한 것은 미군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일본 정치권과의 은밀한 협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일본과 미국 모두 원하는 바였다. 문제는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아시아 국가들, 도쿄 재판이라 불리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도 참여했던 국가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우두머리는 봐주고 그 밑의 수하들만 처벌한다는 말이니 그야말로 모순적인 결정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비유하자면 윤석열은 봐주고 그 밑의 김용현 등은 처벌하는 식이다. 게다가 전쟁 책임자인 일왕을 놔두면 주변국은 나중에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그 맥락에서 생긴 것이 흔히 말하는 평화 헌법이다. 평화 헌법으로 인해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위대는 군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편제상 경찰 조직의 일부다. 모든 국가는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이라는 무력을 사용하고, 국외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라는 무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일본은 경찰만 있고 군대는 없는 국가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극우들은 ‘보통 국가론’을 언급하며 군대가 없는 국가가 말이 되느냐며 평화 헌법을 수정해 일본도 군대를 갖는 보통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일왕을 전범의 책임에서 면해주면서 생긴 결과물이다. 미군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었고, 당시 일본 정치권도 협의했던 내용이다. 전쟁에 졌기 때문에 억울하게 수용한 결과가 아니라, 전쟁에 졌음에도 자신들의 왕을 구제한 일본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
설명이 좀 길었는데,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현대 일본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은 천황이라는 상징적 존재에 대한 처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국화와 칼>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책의 초반까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어떤 연구 방법을 거쳤으며, 왜 연구가 필요한지를 길게 적는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 부분이 <국화와 칼>의 핵심인 것 같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이 계급 사회로 각자 알맞은 위치를 찾고 그것을 유지하는 국가라고 파악한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본은 계급 사회로 주어진 계급을 세습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계급을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아버지의 일을 세습하는 경우가 많다. 3대 라멘 장인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그 집안에 태어나면 라멘 가게만 해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어진 운명만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장인 정신도 발달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현대 사례로는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지만 아버지가 위대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이유로 자신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일본 역사에 가장 화려한 시기라고 알려진 260년의 에도 시대가 실은 지배층의 엄청난 빚더미 속에서 유지된 것이며, 사실상 농민 계층이 일본의 전 계급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는 분석은 날카로웠다.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최초로 개항했던 1853년은 어마어마한 부채로 가신들에게 봉급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농민은 중과세의 부담을 안았던 비참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지배층에 돈을 대주던 상인 계급과 하층 사무라이 계급의 연합이 메이지 유신의 핵심이었다고 적는데, 멀리서 사료만으로 이런 분석을 내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참고로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근대화’라는 말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20세기 우리(조선)의 역사를 되짚으며 근대화가 되지 않았던 국가, 일본은 그걸 성공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식민지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근대화인가? 서구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도입한 것? 서구의 옷을 입고, 서구의 총을 쏘는 것?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쇼군이라는 권력 대리인을 무력화하고 왕(천황)을 다시 국가의 주인으로 모시는 제도였다. 왕정복고. 왕이 지배하는 나라로 되돌아간 것이 메이지 유신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주도했던 당대의 사무라이들 사이에서는 조선의 유교를 공부했다. 유교에서는 왕을 아버지처럼 섬기기 때문이다. 근대화에 성공하여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야 들어야 하는가? 근대화란 무엇인가? 사실상 남의 나라를 지배할 수 있었던 국가들은 제국주의 논리에 통용되는 법 제도에 능통하고, 반항할 경우 무력화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권을 위해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국가 체제가 마련된 경우다. 왕이 있건 왕이 없건, 서구의 옷을 입었건 안 입었건 사실 상관없다. 근대화에 실패한 조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라는 수식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애초에 근대화라는 말 자체는 허상이다. 새로운 기술과 국가 경제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응집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은 갈렸다.
그 외에도 <국화와 칼>에는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분석 내용이 많다. 예를 들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신력과 투지로 모든 싸움을 이겨내는 장면이 어디서 왔는지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일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디테일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지루해진다. 이는 너무 옛날 일본의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흥미가 없는 지엽적인 내용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13장에서는 향후 일본에 대해 전망한 내용도 나오는데,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더 이상 군비에 국가 경제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은 눈부신 발전을 보일 것이며, 착실한 평화 국가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본은 한때 국가 경제력의 13퍼센트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군비에 사용했었다. 그러니 그 자원을 군비에 쓰지 않아도 된다면 경제 발전을 이룩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군대를 갖지 않는 나라가 되는 대신 해외 국방을 미국이 대신 맡게 되면서 국내 발전에 치중할 수 있었다. 또한 미일 관계는 미국이 방법을 제시하고, 일본은 스스로 알아서 해내는 관계가 될 것이며, 이는 일본의 특이한 문화 속에서 가능한 신뢰 관계라고 본다. 이 관계가 현대의 일본까지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원인과 형태는 다르지만 대한민국도 미국과 유사한 관계라는 것을 꿰뚫어 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은 칼이라는 무력 뒤에 국화 같은 일본의 이중적 모습이 있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참고로 국화는 일본의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 이중성을 현지에 가보지 않고 사료 분석과 미국 내 일본인과의 교류로 파악했다는 것도 놀랍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과거에 미국이 일본을 어떻게 보았고, 그래서 현대의 일본까지 어떤 시각이 이어졌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의 흐름을 통해 거대한 맥락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들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알면 알수록 할 말이 많아지는 책이 <국화와 칼>이다.
참고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지막의 이광규 해설도 꼭 읽도록 하자. 아주 알찬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