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김기태
미안한 말이지만 등단 시스템을 통과한 한국 소설에 대해 편협한 편견을 갖고 있다. 모든 소설을 살펴본 것도 아니면서 한국 소설들은 ‘집’, ‘가족’, ‘엄마’, ‘아빠’, ‘친구’, ‘회사’, ‘일’ 중 한 단어는 꼭 등장하며, 이 카테고리 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 생산해 낸다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소설에 손이 가는 일은 드물었고, 어쩌다 한 권 집게 되면 호평보다는 혹평, 그것도 가혹하리만큼 잔인한 비평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권위를 이용해 그 안에서 편하게 먹고 산다는 꼴사나운 지적은 사실 모든 작가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김기태 작가의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접할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독특한 표지와 제목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지만, 버릇처럼 남아있는 편견 때문에 손에 들게 된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내가 이 책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김기태 작가는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실린 총 9편의 단편은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 쓴 것들인데,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김기태의 글은 모두 현시대의 한국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소설들보다 동시대성이라는 특징이 중요하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초반에 배치된 <세상 모든 바다>와 <롤링 선더 러브>다. <세상 모든 바다>는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는 K팝과 관련되어 있다. BTS 혹은 블랙핑크를 연상시키는 인기 아이돌 ‘세상 모든 바다’의 콘서트가 열리는 잠실. 거기 모여든 다국적 팬 중 하나인 재일교포 하쿠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을 다뤘다. 작품에서는 아이돌 덕질과 K팝 문화,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교류가 되어버린 콘서트장이라는 현상뿐만 아니라, 여기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했거나 혹은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보여준다. 마치 인터넷을 통해 형성되는 치열한 논쟁들처럼 이 책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어떤 게 맞다고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이 이야기를 빌드업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인상적이다. 마치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의 발단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다. 그건 김기태라는 작가가 평소에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지켜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의 창작 세계에 빠져 현실과 거리를 두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김기태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사회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롤링 선더 러브>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심리 상태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녀가 짝을 맞춰 함께 숙박하는 세계에 들어오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악한 작가이기에 그 세계관을 뒤집고 요즘 시대의 연애에 관한 질문까지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김기태 작가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회 현상을 파고든 뒤 그것을 짜깁기하는 듯한 이야기 구조에 너무 쉽게 글을 쓴다고 느끼거나 웹소설의 글쓰기 방식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기태 작가의 장점은 단순히 현상을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된 사회적 의미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2024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도 선정된 <보편 교양>이다.
<보편 교양>은 고3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를 맡은 한 교사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교사인 주인공이 지난 천 년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자 서울대학교 권장도서이기도 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선정하면서 벌어지는 묘한 눈치 보기를 다룬 내용인데, 여기에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빨갱이라는 인식론과, 한국 교육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역할만을 한다는 현실 자각, 교사로서의 양심과 학교 측의 입장, 부모의 입장, 학생의 입장 모두를 아우르는 섬세한 시각이 돋보인다. 글을 따라 여러 고민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덧대어가며 고민했는지 알 수 있는데, 꼭 교육 현장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인 만큼 글을 읽다 보면 많은 것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좋았던 건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다’라는 흔한 해결법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소설 속에서도 그것을 잘 짚어내고 있다. 이 균형감과 한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을 하나의 단면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전조등>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작품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을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물론 각 작품이 다루는 대상은 다르다. <전조등>은 말 그대로 한국의 제도권 안에서 살아온 모범적 인생을 다루고 있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그와 반대로 밑바닥에 위치한 두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조등>은 한국 제도권 안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까지 취직한 한 남성의 불안정한 삶을 그리고 있다. 사실 그는 불만인 게 없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 괜찮은 인간관계, 가끔씩 소개팅으로 여자를 만나며 자신의 짝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엇이 잘 사는 건지, 어떤 게 사랑인 건지, 이런 상대와 결혼하면 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 그의 삶은 마치 차량의 깨진 전조등처럼 불안감을 갖고 있다. 언젠가 전조등이 깨진 이유가 밝혀질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전조등이 깨졌음에도 달려갔던 자동차처럼. 전조등이 깨지던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주인공의 삶은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게 잘 사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그 불안감은 깨진 전조등처럼 주인공의 삶에 숨어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지켜보는 독자들도 어딘지 모를 찝찝함, 왠지 모를 불안감 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경제적 하위층에 속하는 두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한국계이지만 외국 국적인 니콜라이, 또 한 사람은 한국 국적으로 한국에서 살아온 진주. 두 사람은 가난한 집안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흰 봉투를 받는 학생이었다. 비슷한 처지로 서로를 인식했던 두 사람은 성인이 되고 어느 한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들은 각자 공장과 마트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한창 젊은 나이에 만나 비슷한 처지의 삶을 위로하면서 서서히 관계가 깊어진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우경화가 이뤄진 데에는 부모 세대만큼 잘 살지 못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이유라는 분석이 있다. 니콜라이와 진주가 보여주는 삶은 사실 그런 젊은 세대의 상황을 대변한다. 진주는 계약직으로 마트 일을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려 하고, 외국인 신분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니콜라이는 더 많은 돈, 더 좋은 시설의 공장을 찾아다닌다. 그가 한국인 국적을 취득하려 해도 전년도 연봉이 삼천팔백만 원 정도를 넘어야 한다. 그건 진주가 공무원 시험에 붙는다 해도 금방 얻기 어려운 돈이다. 하지만 소설은 이것이 젊은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른 소설이었다면 좀 더 사회 비판적이거나 암담한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정확한 현실 인식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깊어지는 관계만큼 독자들에게도 점점 고조되는 감정을 전달한다. 이게 아주 중요한데,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이든, 국적만 다른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든,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의 만만치 않은 한국에서의 삶이든, 그 모든 현실을 또렷이 각인시키면서도 결국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로 진행한다는 것. 그리하여 이 소설의 마지막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하게 되는 어떤 행동의 장면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서는 김기태 작가에게 감사했다.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두 젊은이의 인생에 긍정이란 희망을 던져준 작가에게. 아마 똑같은 소재, 똑같은 인물을 던져줬을 때 이 소설을 암담하게 그리는 작가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기태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들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는지 두 사람이 서로 온기를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 그게 인위적이고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 좋았다.
그 외에도 작가는 책에서 다양한 재주를 선보인다. <태엽은 12와 1/2 바퀴>에서는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고, 그의 등단작이기도 한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를 하는 사람의 심리를, <팍스 아토미카>에서는 강박증을 가진 사람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작가가 그 인물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여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물론 그의 글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밈이나 노래 제목과 가사를 차용한 문장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장에 거부감이 큰 편인데, 다행히 김기태의 소설은 장점이 워낙 강해서 그 단점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의 한 장면이나 드라마의 장면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도 기존의 한국 소설 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방해가 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한편으로 동시대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그의 글에 쓰인 인터넷 밈이나 노래 가사는 같은 시대를 살아야만 이해하는 것들이다. 좋건 싫건, 그가 인용하는 것들은 지금 이 시대라는 연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래 가사나 대중문화 코드를 넣는 부분은 좀 더 줄였으면 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가 넣은 장치들은 작품 안에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 또한 <태엽은 12와 1/2 바퀴>처럼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지만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이 끝나지 않아 애매하게 마무리되는 작품들도 있다. 이는 기존의 등단 작가들이 숱하게 보여온 모습이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럽게 읽은 단편집이었다. 작품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도 좋았고, 각기 다른 장르,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김기태 소설은 판타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쓰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원하는 이상향을 반영한다. 국민의 사랑을 받아 성장한 아이돌이 아티스트가 되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로나, 우리의 별>처럼,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이 담겨있다. 그 판타지를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이 김기태 작가의 매력이다.
뒤늦게 읽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이미 올해의 베스트 목록에 올랐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한국 소설 문법과는 조금 다른 시도에 헤매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사랑한다면, 한국 소설을 즐긴다면 꼭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처음 쓴 감상평은 이 책의 국적이 한국이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기에 이해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책이다. 현시대의 한국인에게 건네는 한국 문학의 위로. 그 뜨거움은 지금이 아니라면 식어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