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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이야기도 아닌, 감독에게 자꾸 눈이 가는 영화

<국보> - 이상일

by 퇴근 후의 서재


* 이번 리뷰에는 영화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알아도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나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읽지 않기를 권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내용이나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 부분은 에둘러 적었다.



개인적으로는 힘을 주고 만든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가나 전통, 애국심에 기대어 호소하거나, 원초적인 슬픔을 건드리겠다고 작정하고 나서는 영화들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어머>가 그런 경우였는데, 이 영화는 누가 봐도 걸작을 만들어 보겠다고 힘을 준 티가 팍팍 난다. 마찬가지로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러너 2049>도 그랬다. 두 영화 모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다 보니 작품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세간에서는 영화의 완성도를 언급하며 두 작품에 좋은 평가를 주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결국 그 세계 안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실패했다고 본다.


영화 <국보>에 대한 거부감도 그런 개인적인 선호에서 비롯됐다. 가부키라는 일본 전통극을 다뤘다는 점, 거기에 ‘국보’라는 부담스러운 제목을 붙인 것부터 내게는 힘을 준 작품처럼 보였다. 재능은 있지만 정통성은 인정받지 못하는 배우와 정통성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재능이 부족한 배우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는 설정은 어딘지 고루해 보였고, 한 분야에 몸을 담은 예술인이 국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은 전통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일본이란 나라에서 이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넘긴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국뽕 영화가 그 나라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순신을 다룬 영화가 그랬고, 미국의 오펜하이머도 결국엔 국뽕 영화인 셈이니까. 그럼에도 <국보>를 보겠다고 나선 것은 오롯이 감독 때문이다. 이상일 감독. 재일교포 감독인 그는 내가 과거에 <유랑의 달>을 리뷰할 때 차기 대박 감독이라고 극찬한 적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번 작품으로 일본 실사 영화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그런 그의 신작을 안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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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보 포스터.jpg


영화는 나가사키의 한 야쿠자 조직 연회장에 오사카의 유명 가부키 배우(한지로)가 초대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연회 중에 가부키 극을 펼치는 소년들을 보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의 재능을 알아본다. 그 아이는 알고 보니 조직 보스의 아들 키쿠오였다. 그날 연회장을 습격한 다른 조직에 의해 보스는 살해당하고, 아들은 가부키 배우의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가부키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유명 배우에게는 아들 슌스케가 있는데 이 둘은 동년배로 함께 성장하게 된다. 야쿠자 조직의 아들은 재능이 뛰어나지만 배우의 가문이 아니라서 정통성을 갖지 못하는 반면, 배우의 아들은 핏줄을 타고난 정통성을 갖지만 야쿠자 조직의 아들에 비해 재능이 부족한 편이다. 이 둘의 관계를 통해 한 분야에 몸을 담은 예술인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영화 <국보>다.


처음에는 둘의 라이벌 관계가 영화의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서 파생된 갈등이나 서로에 대한 질투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양쪽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는 장면들, 그로 인한 성장과 좌절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갈등은 크지 않다. 상대의 재능에 좌절한 배우 가문의 슌스케가 스스로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그 후로 키쿠오가 배우 가문의 이름을 잇게 되지만, 유명 배우인 한지로가 사망하면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키쿠오는 위기를 맞게 된다. 마침 아버지의 사망과 동시에 잠적했던 슌스케가 돌아오면서 가부키계에 복귀하게 된다. 한지로의 사망 이후 기회를 얻지 못하던 키쿠오에 비해 슌스케는 쉽게 기회를 얻는다. 이에 키쿠오는 ‘어떤 결심’을 했다가 가부키 주류 무대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 과정은 감독의 연출로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잘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렇게 뛰어난 재능과 역량을 선보인 키쿠오가 적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찬밥 신세를 받는 장면이나, 8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슌스케가 그리도 쉽게 주류 자리로 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일본 사회의 보수성을 나타내는 장면일 테지만, 한 배우의 등장과 퇴장, 그리고 복귀가 이렇게 소수의 인물에 의해 쉽게 결정되는 것을 보면 좀 의아하긴 하다. 특히 주인공에 해당하는 키쿠오의 경우 엄청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주류에서 밀려난 뒤에 현 ‘국보’인 배우에 의해 복귀하게 되는데, 그가 겪은 좌절을 생각하면 그 과정은 굉장히 쉽게 이뤄진다.


이후 두 배우는 협력관계처럼 되며 가부키 계를 이끌어 나간다. 슌스케가 사라지기 이전에도 그랬듯이. 아마도 두 배우의 퇴장과 복귀가 일종의 시련이나 성장 과정처럼 보이길 바랐던 모양이지만 그것이 이야기로 잘 전달되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빤한 라이벌처럼 보이는 관계를 비틀어서 대립이 아닌 협력의 관계로 끌고 간 부분은 흥미로웠다. 전형성에서 비켜난 이야기 전개는 신선했지만, 영화는 중후반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으면서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다. 개인적으로는 그 전개가 급작스럽게 느껴지긴 했다. 이 마지막은 말 그대로 ‘국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펼쳐지는데, 솔직히 그 성장과 결실이 와닿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보기까지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가부키 극에 대한 생소함이다. 한국 관객은 가부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 예술의 표현법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다. 낯설고 어색한 장르에 빠져들기 힘들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영화에서 여러 차례 재현되는 가부키 극에 대해서는 자막이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다. 그리고 전통이 현대에도 그대로 먹힐 거라고 생각지 않은 제작진이 영리하게 그것을 활용했다. 아무리 자국의 것에 대한 애정이 강한 일본이지만 영화도 거기에 얽매이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가부키 극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들만 따서 보여주며, 이는 대체로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즉, 관객에게 가부키의 참맛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태도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만약 거기에 얽매였다면 이 영화는 지루하게 변했을 것이다. 가부키를 그대로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전통 음악과 발성을 담는 극 위에 과감히 음악을 입히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국보’라는 제목을 내건 이 영화가 보이는 부담감이다. 이는 내가 초반에 언급한 힘을 준 영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일본의 전통을 내세워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영화도 그런 흐름으로 간다. 그러나 그것이 가부키라는 전통극이 아니라 한 예술인의 삶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조금 가벼워진다. 다만 빛이 꽃가루처럼 날리는 장면, 어떤 예술적 순간을 맞은 환상을 재현하는 장면은 우리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접했던 과장된 연출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긴 하다. 그게 전형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장면에 이르는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의문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극복한 것이 감독의 연출력이다. 이렇게 긴 3시간짜리 시대극은 중간에 조금만 잘못해도 지루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상일 감독의 연출력은 이 복잡하고 긴 이야기 속에서도 리듬을 잘 잡아낸다. 필요하면 과감히 생략하거나 축소하기도 하고, 관객을 배우의 입장에 몰입시키기 위해 무대 위의 극을 배우의 시점에서 처리하기도 한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전개를 긴 호흡으로 진행하는 동안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그 쉬워 보이는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실패의 길을 걷곤 한다. 하지만 이상일 감독은 전작에서도 보여준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아주 매끈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혹자들은 재능은 있으나 정통성을 갖지 못한 주인공 키쿠오의 입장과 재일교포 출신 감독인 이상일의 입장을 동일시하곤 하는데, 동감하는 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상일 감독이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특징은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일본의 전통인 가부키를 과감하게 쳐내고 자유롭게 써먹는 장면에서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이방인 출신이 아니었다면 일본처럼 보수적이고 전통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에서는 자유로운 활용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국보>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쁘지 않다’ 정도의 평을 내릴 것 같다. 이 작품은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일본 문화가 그동안 숱하게 양산해 왔던 영화 초반의 눈 내리는 정원과 피 흘리는 비극이라는 장면이나, 가부키 극의 재현, 그리고 예술인의 좌절과 극복, 어떤 경지에 이른 순간까지 무난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극찬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기대한 대로 잘 보여주는 것도 엄청난 재능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내가 전작에서 반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유랑의 달>에서 보여줬던 끝내주는 장면들, 감정을 쥐고 흔드는 영상의 연출, 솔직히 그것까지 이 영화에 담기지 않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찬하는 배우의 연기도 그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가부키라는 생소한 장르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형성에 갇힌 감정 표현과 이야기의 한계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영화 <조커>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이 좌절한 상태에서 혼자 춤추는 장면도 이상일이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극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만 남는다. 영화는 기대하고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대극을 그렇게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잘 해낸 것이지만, 그건 감독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영화 자체만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흠뻑 빠져든 관객과 평이했다는 관객으로 나뉠 것 같다. 장르나 소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안 좋게 보려는 사람도 매끄럽게 만들어진 영화 앞에서 나쁜 평까지는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것 또한 감독의 힘이라고 본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배우와 스토리가 아니라 감독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 영화를 볼지 말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취향에 달렸다. 긴 시대극의 이야기나 사람의 인생이 변곡점을 맞아 휘청일 때 함께 감정이 움직이는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쁘지 않고 평이한,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조금 오글거리는 장면도 있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이상일이란 감독을 알고 그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꼭 한 번 보길 권한다. 이 감독이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흥미롭게 보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튀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 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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