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 성해나
2025년 가장 뜨거웠던 책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홍보 문구 덕에 대중의 관심을 더 끄는 것 같다. 책이 OTT보다도, 혹은 OTT만큼이나 재미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작품은 총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2025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게 한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재능 있는 영화감독과 그의 비도덕적 행위를 우연히 팬이 된 일반인의 시선에서 다루고 있다. 이 글에는 최근 논쟁이 되는 예술가들의 도덕적 평가와 더불어 실제 한국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들이 한데 응축된 느낌이다. 특히 영화계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기시감이 드는 내용들이 많을 것이다.
두 번째 <스무드>는 업무로 한국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극우 집회에 들어가게 되는 한국계 외국인의 이야기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로 볼 수 있는데, 대중에게 알려진 극우 집회의 모습을 차용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풍자한다.
세 번째 <혼모노>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신빨이 다한 무당이 자신이 모시던 할매 신이 다른 어린 무당에게 옮겨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밥줄이 끊길 위험에 처한 무당이 자신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고 무엇이 진짜(혼모노)인지를 고민한다.
네 번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한국의 1세대 대표 건축가 김수근의 이야기다. 그는 한국 건축사에 남을 굵직한 건축물을 세웠는데, 동시에 국가보안법 등의 구실로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혔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 <1987>에서 등장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실제 배경인 곳도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작품에는 이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드러내지 않지만, 대공분실로 추정되는 건축물을 지을 당시 건축가의 마음은 어땠을까를 추정하여 쓴 소설이다.
다섯 번째 <우호적 감정>은 회사에서의 관계가 공적 사적 영역에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그렸고, 여섯 번째 <잉태기>는 철없는 딸의 출산을 앞두고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다. 자식을 오냐오냐 키우면서 모든 것에 간섭하는 요즘 부모들의 세태를 풍자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메탈>은 메탈 밴드의 꿈을 꾸면서 나아갔던 청춘들의 이야기다.
굳이 각 단편의 이야기를 상세히 나열한 것은, 작가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떠올랐다. 그 책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하지만 성해나의 <혼모노>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회의 여러 현상을 엮어서 이야기의 재료로 삼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길티 클럽>에서도 영화계를 위시한 예술계의 도덕성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거기서 파생된 논란과 논의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영화에 전혀 관심 없었던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척할 뿐이다.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이나 지젤 사피로의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책에서 다뤄지는 논쟁은 없고 그것을 에피소드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데 중점을 둔 느낌이다.
성해나 작가의 이러한 성향은 건축가 김수근의 이야기를 다룬 네 번째 <구의 집>에서도 나타난다. 김수근에 대한 논란은 명백하다. 재능 있는 건축가이지만 독재 정권에 결탁하여 국가가 원하는 바대로 건축물을 세웠고, 남영동의 대공분실처럼 인권을 유린하는 목적에 자신의 재능을 적극 활용한 경우다. 이를 옹호하는 측은 건축의 특성상 거대한 투자가 없으면 진행이 될 수 없고, 당시 한국에서 국가의 지원만큼 확실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성해나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 찾기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에 깊게 관심을 가졌다면 이 논란마저도 소설에 담을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이 쓴 <길티 클럽>과도 무관하지 않은 논쟁이고, 따지고 보면 무엇이 진짜인지를 가리려 했던 <혼모노>의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까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깜짝 놀랄 뉴스, ‘한국의 내로라하는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대공분실도 만들었다’라는 한 줄 지식을 소설로 바꿨을 뿐이다. 작품에는 이 단편 정보에서 더 나아간 바가 없다.
꼭 소설이 사회의 확장된 논의를 담아야 하는가? 꼭 깊은 주제 의식을 담아야 하는가?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설에서는 흔히 그러길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으면 독자에게는 이야기가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해나의 소설에서 모든 소재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쓰였다. 그래서 각 작품을 읽고 나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명확하다. 애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차용해 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은 여러 주제들, 혹은 현상들, 우리가 접한 사건들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지막을 읽고 난 뒤에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라는 의문 부호를 달게 한다.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이 모두 그러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하고, 저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기도 한 것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자신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다 보니, 사건을 구성하고 줄기를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그냥 한 작품이 쓰였을 뿐이다.
앞서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언급했는데, 동명의 단편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소설에서 두 남녀는 한국의 잔혹한 현실과 계속해서 마주한다. 한국인 귀화를 위해 치러야 하는 엄청난 비용이나, 그 비용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한국인의 현실 같은 것들. 아마도 많은 작가들은 이 사회적 문제나 아이러니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김기태 작가는 이런 사회적 배경들을 빠르게 지나간다. 왜냐하면 이런 헬조선의 혹독한 현실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모습과 그것을 희망과 애정을 담아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의 열망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그 사회적 함의들은 곁가지로 흘러가고 마무리에서 느껴지는 애틋한 감정이 강하게 남는 것이다. 그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성해나의 <혼모노>에 실린 단편들은 전부 그렇지 못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 소재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알 법한 것들을 쳐내고 ‘현상’에만 관심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길티 클럽>, <구의 집>을 썼음에도 한 사람의 평가에 도덕적 비중이 커진 최근의 논쟁과 논의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우 집회를 다룬 <스무드>를 썼음에도 그저 현상만 다루었기 때문에 <혼모노>에서 할매 신이 실존하는 무당의 세계를 쓰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녀가 진짜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작가였다면, 지난 몇 년간 윤석열-김건희의 무속 논란을 모를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신내림이 실존하는 세계관을 쓰려고 할 때 고민의 흔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우 집회의 모습, 천재 건축가의 아이러니한 이력, 예술가의 도덕적 논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음에도, 단편적 사실을 소설로 바꾼 결과물만 남았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기만 하다면.
실제로 성해나 작가는 이런 주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끄는 데 재능을 보인다. 특히나 두 인물의 대립 구도로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는데, <혼모노>와 <잉태기>가 대표적이고, <구의 집>에서도 원래는 한 명의 인물이었을 것을 교수와 제자라는 두 인물로 나눠 이야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은 대부분 설정에서 온 것이다. <잉태기>에서는 흔한 고부 갈등 구조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대립으로 틀었고, <혼모노>에서는 신이 떠난 무당과 그 신이 새로 정착한 무당의 대결을 만든 뒤에 보통 덕후를 가리키는 ‘혼모노’라는 단어를 붙여서 글의 맛을 살렸다. 이런 감각과 재능은 아무나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 단편적인 이야기에만 그친다면 독자의 만족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요즘 한국인들은 각종 OTT를 비롯해 유튜브, 웹툰, 웹소설, 거기에 외국 소설들까지 온갖 장르의 콘텐츠를 접한다. 이야기나 작품의 힘을 보는 눈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성해나의 작품이 지금처럼 ‘현상’에만 그치는 소설을 쓴다면 과연 그 생명력이 오래갈 수 있을까. 한국 소설계에는 잠깐 반짝이고 희미해진 사례들이 너무 많았다. 화려한 등장 후 애매하게 사라진 작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남긴다.
과연 성해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까?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녀가 혼모노가 될지 여부에 따라 다음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