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 윤가은
감상하고 나면 참 좋다고 느끼지만, 아직 안 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난 뒤에 적은 한 줄 평이다.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어떤 영화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영화 감상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공백’이 참 중요하다.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맞닥뜨렸을 때 경험하게 되는 의문과 질문들이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보고 난 뒤에 엄지를 올리면서도 아직 못 본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참 슬픈 일이다.
애꿎게도 <세계의 주인>의 포스터라던가 영화 제목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솔직히 저 영화를 OTT 세계에 던져놓았을 때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좋다는 평을 들었음에도 영화 관람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으니까. 윤가은 감독의 전작을 본 적 있던 터라 대충 현실에 밀착된 어떤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었고 그게 전작의 연장선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신의 넷플릭스 계정에 찜하기 목록에 담긴 작품들처럼 클릭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지만, 한 번 관람을 시작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체험을 선사한다. 그래서 가급적 이 작품은 영화관에서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감상하기를 권한다. 나는 극장에서 보고 난 뒤 이런 영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뻔했다.
최대한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이주인’이라는 여고생이다. 그녀는 매우 장난기 있으면서도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밝은 성격이다. 보육 시설을 운영하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나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빠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데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그러다 학교 친구인 ‘수호’가 출소한 성범죄자가 우리 동네에 이사 오게 되었다면서 이를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한다. ‘수호’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그 여동생은 주인공의 엄마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수호는 주인공에게도 서명을 부탁하는데 그녀는 반대한다. 그리고 수호는 여동생의 몸에서 어디서 난 건지 알 수 없는 상처를 발견한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살아가는 수호는 여동생의 상처에 의문을 품는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엉기고 설기면서 진행된다.
일단 영화를 볼 때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계속 눈길을 끌어당기는 화면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치장할 생각이 없다. 원래 윤가은 감독의 성향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발랄한 여고생의 캐릭터에서 우리가 떠올리기 쉬운, 숱한 드라마와 영화가 조성해 온 인위적인 느낌이 없다. 게다가 그런 캐릭터가 움직이는 공간도 너무나 현실적이다. 현실에 방치된 영화는 보통 예쁘게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관객의 눈을 끌어당기기 힘들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 방치된 공간인데 자꾸만 보게 만들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도 생동감이 넘쳐서 지루하지 않다. 이건 온전히 감독의 힘이다. 공간을 구현하고 그것을 활용할 때 쓸데없는 장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보통 ‘현실을 다룬 현실적인 영화’는 느릿하고 지루한 장면이 쏟아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는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매 장면을 아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냈다. 정말 대단한 연출력이다.
캐릭터의 힘도 아주 인상적인데, 특히 주인공 이주인을 맡은 서수빈 배우의 힘은 놀랍다. 높은 텐션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오갈 때의 어색함이 하나도 없다. 진지할 때, 능청스러울 때, 동화 속에 등장할 것처럼 해맑을 때, 모든 순간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도 감독의 힘이 컸다. 어느 정도의 톤을 오가야 하는지 섬세한 설정이 없었다면 한 인물로 그려지기 어렵거나 어색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윤가은 감독이 얼마나 정교하게 디렉팅을 했는지 주인공뿐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인물로서 잘 살아있다. 원래부터 아역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아역들을 상대해 왔기에 아이들의 연기는 그렇다 치는데, 성인들의 연기까지 현실의 온도에 잘 맞추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놀라웠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 속에서 관객을 끝까지 영화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연출력은 솔직히 말해서 이창동 감독 이후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매 장면에서 설명을 아낀다. 그렇다고 모든 걸 숨기는 건 아니고, 말미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풀어낸다. 하지만 그 설명을 아끼는 순간, 즉, 관객들이 공백의 상태에서 사회에서 한 번쯤 목격했을 질문들을 맞닥뜨리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들이 펼쳐진다. 영화는 그것을 의도했다. 우리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여러 가능성들, 혹은 의심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급적 사전 정보를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이 공백은 일종의 미스터리 같은 장치를 해서 영화의 서사를 끝까지 궁금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참 영리한 시나리오다.
영화의 중후반이 당신이 상상한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상한 관객도 있을 거고 그렇지 못한 관객도 있을 거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공백의 순간, 질문의 순간이 중요하다. 그건 영화의 마지막 이주인이 펼쳐 보는 세 번째 쪽지에서 분명해진다. 어찌 보면 온라인의 댓글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쪽지는 관객이 품었던 생각들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쪽지를 읽는 내레이션이 참 좋았다. 이 또한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다.
어떤 영화들은 체험으로서 작용할 때 엄청난 빛을 발한다. <세계의 주인>은 딱 그런 경우다. 매력적이지 못한 포스터와 제목이지만, 이 영화를 관람하고 난다면 당신이 체험했던 119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영화가 끝났을 때 자신의 인생 두 시간을 이 작품에 할애했던 자신에게 박수 치고 싶을 것이다. 아, 물론 이미 박수는 치고 있을 것이다. 자막이 오르는 순간, 소리는 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현실의 이야기를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리듬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매력적으로 전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한국 영화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영화 중 하나다. 그러니 혹시 아직 관람하지 않았다면, 한 번 들어봤는데 잊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꼭 극장에서 체험해 보길 바란다. 보고 나면 바로 2026년에 가장 잘한 일로 한 줄을 채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