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오지랖

아직도 모르겠다

by 간단

어렸을 때부터 나는 웃음도 많고 분노도 많은 아이였다.

쉽게 웃었지만 그만큼 쉽게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의 분노는 어느 순간부터 정의의 한 부분이 되었다.


물론,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가끔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일을 모른척하기도 하는

비겁한 사람이다.


이런 말이 있다.

분노조절장애는 사람에 따라 고쳐지기도 한다고.


연약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분노를 내뿜으면서도

무서운 사람 앞에서는 '이 정도는 참지 뭐' 한다고.


그래서 나는 늘 궁금하다.

난 누구 앞에서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강한 자 앞에서 과연 내 정의가 발휘될 것인가.


꽤 오래 전, 친구와 함께 한강에 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특히 화장실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총 세 칸이었는데 한 줄로 서서

자기 차례일 때 빈 칸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도 줄을 서 있었고, 내 앞 쪽에는 이슬람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애와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오줌이 마려워 죽겠다는 아줌마(일명 오줌마)와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


이슬람 어머니는 여자애를 빈칸으로 들여보내놓고 줄 서 있는 사람들 뒤쪽으로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했다.

곧이어 이슬람 어머니와 같은 인종인 듯한 임산부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배가 산만했다.

아마 이슬람 엄마는 그녀 대신에 줄을 서준 것 같았다.


그런데 참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내 옆에 임산부와 오줌마가 동시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내가 들어갈 차례인데 바로 내 앞의 칸에서 문이 열렸다.

그 안의 사람이 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당연히 임산부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슬람 어머니가 대신 줄을 서줬기 때문에 새치기도 아니거니와

배가 엄청나게 불러 있는 임산부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뒤로 물러나있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임산부 분이 조금 멈칫한 사이 오줌마가 안으로 휙 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그러자 술을 먹지 않았음에도 나는 마치 술을 먹은 것처럼 순간적인 용기가 생겼다.

오줌마의 팔뚝을 붙잡았다.

그리고 임산부의 얼굴을 쳐다봤다.

영어는 할 줄 모른다. 이 사람이 영어를 쓰는지조차도 모른다.

고개짓으로 빈 칸에 들어가라고 했다.

임산부가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오줌마는 확실히 마음이 상한 것 같다.


그 옆 칸이 비었다.

분명 그 아줌마들은 내 뒤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내 차례인데도 뭔가 미안해져

오줌마에게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다.


오줌마는 확실히 기분이 나쁜 것 같다.

뭔가 삐친 듯이 나를 쏘아봤다.

그녀의 친구가

'양보해주잖아~ 들어가.'라고 했다.

마지못해 오줌마는 그 칸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내가 빈칸에 들어가고 나오니

그녀는 세면대 바로 앞에 서서 손을 말리고 있었다.


한강 화장실은 상당히 좁아서 세면대 앞에는

둘이서 나란히 서 있기가 힘들다.

오줌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비켜주지 않았다.


오줌마는 확실히 삐친 것 같았다.


신경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고민했다.

내가 한 행동이 과연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이게 정의인가 오지랖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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