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과시는 결핍'이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은 사실 그것이 그 사람한테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문맥 자체는 이해가 되었으나 '과시'와 '결핍'이라는 서로 상충된 단어가 가진 이질감과 함께 그와 관련된 사례들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이 문구를 인식하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 등을 보며 '과시는 결핍'이라는 말이 정말 맞구나 여실히 깨닫고 있다.
예컨대, 어렸을 때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다던 한 친구는 이상하게도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경험 등을 강조하며 말하곤 했다. 심할 때는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주제에는 별다른 제스처를 보이지 않다가도 내가 누군가와 만나서 뭔가를 했다는 얘기를 하면 그에 질세라 자기도 친구들을 만났던 얘기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내용의 핵심은 '누군가'가 아니라 '뭔가'였는데...
또한 이 친구는 좀처럼 누군가와 손절을 잘하지 않았고 싫든 좋든 지인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편이어서 굉장히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사람을 잃는 것이 참 두려운가보다 싶었다. 처음에는 이 친구의 행동들이 가끔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고 의아한 점도 있었으나 어렸을 때의 왕따 경험을 전해 듣고는 바로 납득이 됐다.
또 다른 친구는 뭐랄까..좋은 것(곳)을 과시했다. 예전에 나름 핫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내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여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예약을 하고 이곳에 들어와 앉아서 메뉴를 고르는 꽤 긴 과정 동안 '여기에 와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내가 스스로 멍청하기도 하고 우스워서 그저 피식 웃으며 "나 여기에 왔었던 것 같아. 이제야 기억나네."라고 가볍게 얘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래? 나도 저번에 부모님이랑 한번 왔었는데 맛있어서 또 오고 싶더라." 정도의 반응으로 그칠 텐데 그 친구는 정말 질세라 "나도 왔었어! 저번에 부모님이랑 왔었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었어!"라고 급발진하듯이 반응해서 당황한 적이 있다. 그밖에도, 휴가를 갔다 왔다는 카톡에 그냥 의례적인 말로 "뭐하고 놀았어?"라고 보냈더니 본인이 갔던 곳을 쭉 나열하는 거였다. 만약에 바다를 갔다 왔다고 하면 그냥 "바다 가서 수영하고 왔어." 정도면 될 텐데, 자신이 묵은 좋은 숙소 이름과 자신이 먹은 좋은 레스토랑 등을 콤마까지 찍어가며 나열해서 어떤 대답을 보내야 할지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다.
이외에도 명품을 사고 싶어서 짝퉁을 구매한다든지, 돈이 없다고 힘들어 하는 와중에도 최신 기종의 제품을 구매한다든지. 자신이 가진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마지막 친구는 선천적으로 우울함을 타고난 친구였다. 보통사람보다 기력이 많이 없는 편이었고 우울함을 많이 느껴서 주기적으로 전문상담도 받곤 했다. 그 친구와 함께 있다가 그녀가 축 처지는 순간이 오면 옆에서 혼자 똥꼬쇼(?)를 하듯 나름의 질문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의 텐션을 높이려 노력 아닌 노력을 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의 차분함과 단정함을 좋아했었다. 제3자로서 봤을 때 이 친구의 결핍은 우울한 성격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차분함'이라는 장점으로 승화시키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신은 누구를 처음 만나면 상대와 스스럼 없이 얘기하고 밝게 대화를 하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거였다.
그 말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 친구는 정말 처음 만난 사람과는 온몸의 기력을 써가며 이야기를 잘했으니까. 단지 두 번째 만남부터 자신의 본래 성격이 드러나며 처음 만났을 때 쓰던 기력의 반의 반도 못 쓴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자신의 우울함을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를 잘할 수 있음'으로 포장하여 숨기려고 했다. 스스로 텐션이 낮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는 것이다.
이 친구들을 생각하며 나에게 과시이자 결핍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나의 결핍은 '직장'에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근무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벌어들인 수입은 웬만한 직장인보다 많은 편이었으나 나의 결핍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돈과 관련돼서 과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너무 프리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수입으로 포장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비록 직장은 이곳저곳 다니고 있지만 그렇게 벌어도 수입은 이렇게 많아.'라는 뜻으로.